(서울=연합인포맥스) 매년 새해가 되면 은행과 증권사 PB(프라이빗 뱅커)들의 입에 시선이 집중된다. 한 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시장의 파도 속에서 고액자산가들은 어떤 전략을 짤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포트폴리오를 관리해주는 PB들이 언론지상에 내놓는 말 한마디에 개미들은 귀를 쫑긋 세운다.

PB들이 올해 초 내놓은 화두는 리스크 관리였다. 작년의 증시 대세 상승장이 올해도 계속되리라는 보장이 없고 미국의 돈줄 죄기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어 불확실성이 클 거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이들은 금(金)으로 자산 배분할 것을 권했다.

금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을 방어할 수 있는 실물 투자자산인데다 포트폴리오 다양화 차원에서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는 가장 전통적인 수단이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이기 때문에 급변하는 증시의 변동성을 방어하는 역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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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해 PB들의 말대로 금에 투자했다면 투자자들은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연초부터 금값(KRX 금 현물 기준)이 조정받더니 작년 고점 대비 20% 낮은 수준에서 의미 없는 박스권 등락만 반복했기 때문이다. 주식, 채권, 외환 등 금융시장이 올해 내내 요동쳤음을 감안하면 아쉬운 결과다. 전통적인 시장 논리대로라면 안전자산인 금값이 상승세를 탔어야 하나 그렇지 못했다. 앞으로 시장의 불안이 주기적으로 계속되겠지만 금의 투자 기대치는 높지 않을 것이다.

금은 예측과 분석이 어려운 자산 중 하나다. 달러 가치, 인플레이션, 미국의 통화정책 등 복합적인 이유가 결합돼 등락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금의 예상을 더욱 어렵게 하는 건 비트코인의 존재다. 비트코인이 금의 역할을 대신할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이라며 "미래에 금을 대체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으로 유동성이 몰리면 금값이 떨어지고,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면 금 시장으로 돈이 몰려오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달러와 금 사이에 있던 전통적인 역의 상관관계는 점점 희석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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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동안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비트코인이 제도권으로 다가오면서 생긴 변화다. 미국에선 최근 비트코인 연계 상장지수펀드(ETF)가 상장해 시장참가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미국 자산운용사 반에크(VanEck)가 신청한 비트코인 현물 ETF는 다음 달 4일 승인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비트코인 ETF는 가상자산과 제도권 시장을 연결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비트코인이 기관투자자들의 투자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는 뜻이다. 미국의 금융기관 중에는 ETF 뿐만 아니라 가상화폐를 자산군에 편입하는 곳도 있다. 미국 소방관펀드가 295억원 어치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매입했고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 연기금 2곳도 590억원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엄격한 가상자산 규제를 여러차례 경험한 우리나라 입장에선 언감생심이다.

실체 없는 거품이라는 비난을 받던 비트코인의 ETF 상장은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거리를 던지고 있다. 전통적 자산 금의 지위를 위협하는 비트코인이 제도권에 안착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달러와 금이 지배하던 금융 질서는 새로운 세상에서 어떻게 될까. 블록체인과 NFT(대체 불가능 토큰),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새로운 질서는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적 자산군은 과거의 지위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질 것인가. 금융의 역사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취재본부장)

jang7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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