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작년부터 치솟던 물가가 한풀 꺾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한때 월간 기준 9.1%까지 찍었으나 최근 4% 선으로 내려왔다. 미국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된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끝자락으로 향하는 가운데 물가 상승 폭의 둔화가 어느 선까지 이뤄질지 관심이 쏠린다. 미국 연준이 목표로 하는 2%대로 언제쯤 복귀할 것인지, 금리정책 당국의 스탠스는 그 후 어떻게 변할지가 시장의 최대 관심사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물가 상승 폭의 둔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물가 상승률은 3.3%로 4개월 연속 둔화세를 이어갔다. 3.3%는 지난 2021년 10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추이
연합인포맥스 매크로 차트




초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진정되고 있으나, 물가 수준이 아주 낮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 이전과 그 후를 비교해보면 극명히 드러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의 천문학적인 돈 풀기 정책이 시작되면서 미국의 물가수준은 5%대로 올라갔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9%대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 발생 이전 미국의 CPI는 2~3%대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우리나라 역시 코로나 이전 CPI 흐름을 보면 2%를 넘긴 적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 1% 내외에서 안정적으로 관리됐었다. 다른 나라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 이전에 나타난 안정적인 물가의 바탕엔 어떤 변수들이 있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2020년 코로나 사태 이전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추이
연합인포맥스 매크로 차트



세계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편입한 90년대 중반 이후 지난 30년간 저금리와 저물가 시대를 향유해왔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전 세계에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수출하고 선진국들은 이를 토대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 중국이 디플레이션을 세계에 수출한다는 말이 나왔던 때다. 그러나 중국의 임금이 오르고 땅값과 부대 비용이 오르면서 더 이상 이런 경제 구조가 유지될 수 없게 됐다.

이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을 즈음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다. 2008년 발생한 미국 은행들의 연쇄파산이 세계 경제의 불황을 유발하고, 그리스와 남유럽을 중심으로 유럽연합(EU)의 재정위기까지 이어지면서 저물가, 저금리 체제가 좀 더 오랜 시간 유지될 수 있었다. 글로벌 위기가 오자 디플레이션이 따라왔고, 이를 막기 위해 너도나도 막대한 돈 풀기 정책을 쓰면서 금리도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세 차례에 걸친 미국의 양적완화가 중단되고, 풀었던 돈을 회수하는 과정까지 진행됐으나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저물가 시대가 막을 내리진 못했다.

세계는 과연 코로나 이전의 물가 수준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디플레이션을 수출하던 중국은 이제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국면으로 빠졌다. 달라진 세계정세는 저물가 시대를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패권 다툼 속에서 곡물 가격과 에너지 가격의 안정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곡물 가격은 전쟁에 발목 잡혀 쉽게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국제유가는 하락세를 타는가 싶더니 산유국들의 감산 담합에 바닥이 막힌 형국이다.

물가 둔화에 힘입어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전 세계 통화당국이 급격한 금리인하를 할 만큼 경제 상황이 다급한지 의문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후유증은 아직까지는 걱정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완전고용을 얘기할 만큼 고용시장도 아직까지 나쁘지 않다. 경제 성장률이 꺾이는 점은 부담스럽지만 과거 위기 때만큼 과감한 조치를 할 정도는 아니다. 현재의 물가수준과 기준금리 수준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지난 시절 경제구조의 밑바탕이 됐던 저물가, 저금리 시대로 회귀하기는 이제 어렵다는 뜻이다. 이머징마켓(개발도상국)이 감내해야 할 고통과 비용은 그만큼 커질 수 있다. 조달금리 부담은 미래 진행형인 이슈가 될 것이며 자본유출 이슈도 지속적으로 제기될 수 있다. 경제 체력이 강한 선진국들은 버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는 버티는 데 한계가 올 것이다.(편집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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