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주식시장의 거품을 측정하는 고전적인 신호가 몇 개 있다. 구두닦이가 주식 사라고 추천할 때, 증시 객장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릴 때, 증권거래소에서 꽃가루가 날리는 사진이 조간신문 1면에 등장할 때 등이다.

비대면, 온라인거래가 일상화된 지금은 다른 신호로 꼭지를 파악할 수 있다. 온라인커뮤니티에서 주식 성공담 글이 늘어날 때, 수익률 계좌 인증이 많아질 때가 그렇다. "이 종목 좋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도 거품의 영역이라는 시그널일 수 있다.

거품이 끼는 시기엔 스타 주식이 입에 오르기 마련이다. 2000년대 IT 버블 때의 새롬기술이 좋은 예다. 새롬기술은 99년 11월 미국에서 시작한 무료인터넷서비스 다이얼패드로 돌풍을 일으킨 뒤 주당 30만원(액면가 5천원 기준 300만원)을 돌파하며 황제주라는 칭호를 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엔 전기차와 2차전지 주식, 바이오 주식들이 스타대열에 올랐다. 미국에선 최근 1천200달러 고지에 오른 테슬라가 대표적인 스타다. 스타 펀드매니저의 성공담도 증시 거품을 상징하는 단골 모델일 것이다. 그 자리를 요즘은 유튜브 스타들이 차지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이제 지나간 것 같다. 코로나 19 사태 이후 상승일로를 걷던 주식시장의 힘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새해초 3,266까지 올랐던 코스피 지수는 최근 탄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며 3천선 밑으로 밀려났다. 지난 6월 25일 사상 최고치인 3,316을 찍은 이후 대세 하락에 들어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때 75조원을 찍었던 고객예탁금은 1일 현재 66조원까지 쪼그라 들었다. 시장을 떠나는 개인투자자들이 늘어난다는 신호다. 코로나 이후 대세 상승장을 주도했던 동학 개미들이 주가 하락으로 잇따라 쓴맛을 봤기 때문이다. 1월 초 삼성전자의 주주가 된 동학 개미들은 현재 두 자릿수의 마이너스 수익률에 빠져있다. 9만6천원까지 올랐던 주가가 7만원까지 추락했기 때문이다. 실적은 사상 최대라는데 주가는 왜 내리는지 영문도 모른 채 시퍼런 계좌만 보며 한숨짓기 일쑤다.

사두면 오른다는 다른 우량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가가 내릴 때마다 기업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주식을 사들였지만 기대와 달리 주가는 쉽게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달라진 시장을 두고 유행했던 "이번엔 다르다"는 명제는 자취를 감췄다.

실망한 개미들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한다. '천슬라' 열풍이 휩쓰는 미국 주식이나 선물 ETF(상장지수펀드) 상장을 계기로 다시 기지개를 켜는 비트코인이 그 대상이다. 치열하게 공부하고 연구하는 투자자들은 '박스피(박스권에 머문 코스피)'로 전락한 한국을 외면하고 미국으로 간다. 배당과 시세차익 두 마리 토끼를 노리며 미국 증시에 장기투자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승승장구하는 미국 주식을 보며 한국주식에만 투자했던 동학개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미국은 주주친화적이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식투자의 꽃인 배당 성향에서도 우리나라는 아직 미국과 많은 차이가 나고, 온갖 유상증자와 물적분할을 이용해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떠넘기는 대주주도 아직 많은 게 현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부활했지만 여전히 논란거리인 공매도 문제, 주가가 오르니 기다렸다는 듯이 물량폭탄으로 돌변하는 전환사채 등 후진적인 우리 증시 관행을 열거하자면 끝없이 많다. 개인투자자들이 국장(한국시장)을 떠나 미장(미국시장)으로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상 최고치 경신 행진을 계속하는 미국 증시와 제자리걸음을 하는 우리 증시는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투자의 빗장이 열린 지금 우리 상장기업들은 미국 증시의 기업들과도 경쟁하는 상황이 됐다. 오랜만에 바뀐 투자문화의 결실을 얻기 위해선 주주들을 대하는 자세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윈윈할 수 있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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