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새로 창업하는 스타트업의 꿈은 기업가치 10억달러 규모의 '유니콘'이 되는 것이다. 유니콘은 곧 성공한 스타트업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유니콘보다 10배가 더 큰 기업가치를 갖는 '데카콘'들이 속출하고 있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데카콘에 등극한 첫 기업은 페이스북(현 메타)이었다. 2007년이었으니 벌써 14년 전의 일이다. 이후 전세계에서 데카콘 반열에 오른 기업은 84개(스타트업 정보서비스 크런치베이스 추산)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쿠팡과 야놀자, 두나무가 데카콘의 위치에 등극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1위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창업자는 송치형 이사회 의장이다. 1979년생으로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특례를 위해 개발자로 결제서비스 업체 다날에 들어간 게 그의 첫 사회생활이었다. 당시 휴대전화 불법결제 차단 시스템을 개발해 '천재 개발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병역특례를 마치고 컨설팅 기업 이노무브를 잠시 거친 뒤 2011년 창업한 회사가 두나무다. 송치형 의장의 강점은 사업모델 개발이었다. 이것 하나만으로 당시 카카오가 35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전자책과 뉴스 골라주기 서비스 등의 사업에서 쓰라린 실패도 맛봤지만 이후 승승장구한다.

PC 기반의 홈트레이딩서비스(HTS)에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시도한 증권 플랫폼 증권플러스는 성공의 실마리였다. 가상화폐 가격이 쭉쭉 오르던 2017년엔 가상자산 거래소 사업에 뛰어든다. 증권플러스에서 쌓은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업비트였다. 당시 1위였던 빗썸도 단번에 추격했다. 지난달 기준 업비트의 누적 회원 수는 무려 890만명에 이른다. 1년 전보다 3배 늘었다. 전체 회원의 60%는 MZ세대다. 작년 매출은 1천767억원,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866억원과 477억원에 이른다. 창업 10년 만의 성과치고는 엄청나다. 최근 두나무는 방탄소년단(BTS)의 기획사 하이브와 NFT(대체불가능토큰) 사업에서 협업하기로 했다. 하이브는 두나무 지분 2.48%를 약 5천억원에 확보하기로 했다. 이를 근거로 하면 두나무의 기업가치는 20조원에 이른다. 지금까지 총 50억원을 투자한 카카오는 조 단위의 차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정부가 우리금융지주 9.3%를 민간에 팔았다. 이 지분을 5곳이 가져갔는데 두나무도 낙찰자로 선정됐다. 지분 매각을 통해 우리금융이 23년 만에 완전 민영화에 성공했다는 뉴스의 이면에 가려졌지만, 두나무가 소수 주주로 참여하게 됐다는 것은 적잖은 파장을 낳고 있다. 불과 1%의 지분을 갖는 재무적 투자자로 이사회에 참여할 수도 없는 지위다. 하지만 사회적 이슈가 큰 가상자산을 중개하는 기업을 운영하는 곳이 전통적 금융 카테고리 속에 침투한 것은 그 자체로 '사건'이다. 그렇다고 두나무가 은행업에 욕심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상자산 거래소 사업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차원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매년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발급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데 우리금융 지분을 갖고 있으면 협업이 쉽다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증권과 가상자산에 이어 은행까지 진출한 두나무의 향후 행보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강력한 개발 능력과 사업모델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해 온 송치형 의장의 차기 사업모델이 이번 지분 인수를 계기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눈길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나무가 보유한 현금은 2조원에 육박한다. 마음만 먹으면 과감한 후속 투자는 충분하다. 가상자산이라는 틀을 벗어나 종합금융플랫폼으로 가기 위한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카카오뱅크와 토스, 카카오페이 등이 비슷한 길을 걷고 있고 기존 금융권에 상당한 파급 효과를 주고 있다. 핀테크를 기반으로 한 금융플랫폼의 진화 속도는 엄청나다. 우리금융 지분 1%를 보유한 소수 주주라고 폄훼할 일은 아니다. 여의도와 명동의 증권맨과 금융인들은 긴장해야 한다. 판교와 강남에서 개발력과 아이디어로 중무장한 MZ세대 핀테크 창업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한다. 돈의 흐름은 이미 바뀌고 있다. 금융은 결국 사람의 아이디어로 돈을 버는 사업이다. 5년 후 한국 금융의 판도가 어떻게 변화돼 있을지 벌써 궁금해진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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