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들고나온 구호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이 말은 대선에서 경제 이슈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시킨 계기가 됐다. 조지 H. 부시 대통령은 당시 걸프전 승리를 이끌며 높은 지지율을 확보했으나 경제 측면에서는 약점이 많았다. 미국은 장기간 계속된 경제침체와 실업률 증가라는 고질병을 앓고 있었고,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적자로 대표되는 쌍둥이 적자도 골칫거리였다. 클린턴 캠프는 이러한 경제이슈를 파고들어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6년 대선에서 들고나온 슬로건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다. 안보와 경제정책에서 미국의 핵심이익을 지키고, 무엇보다 미국인의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구호로 대선 승리를 가져왔다.

국내에서도 경제문제는 대선의 핵심 이슈가 된 지 오래다. IMF(국제통화기금) 체제 이후 특히 이러한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1997년 김대중 후보의 '든든해요 김대중, 경제를 살립시다', 2007년 이명박 후보의 '실천하는 경제대통령'은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유명한 슬로건이다. 2012년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경제공약 키워드로 들고 나왔다.

자본주의 역사가 누적되고 진화하면서 '먹고 사는 문제'가 대선의 핵심 이슈가 됐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국가 운영의 철학과 이념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경제문제 해결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민심이다. 과거의 대선도 그랬고, 앞으로의 대선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이제 3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요란한 공약과 구호가 난무하지만 정작 나라 경제의 미래를 설계할 경제 비전은 무엇인지 모호하다. 인기영합적인 공약은 많으나 큰 그림의 국가경제 아젠다는 찾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 경제와 산업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공급망 재편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길은 무엇인지 해법을 말하는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을 비롯해 미래 먹거리를 마련할 수많은 과제들이 있으나 국민의 마음을 붙잡는 경제 슬로건은 찾을 수 없다.

대선국면에서 경제 이슈가 후순위로 밀려난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본격적인 대선 캠페인이 시작되면 경제문제는 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정책과 비전에 대한 토론이 아니라 정쟁과 진흙탕 공방으로만 치우치다 보면 우리는 또 중요한 시간을 놓칠지 모른다.

우리는 미ㆍ중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안보와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중대한 지점에 서 있다. 국가지도자는 이 문제에 대한 정책과 해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냉혹한 시장의 현실을 극복하려면 경제와 외교 정책의 고급 콜라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취재본부장)

jang73@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1시 18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