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 6월 15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은 69(찬성)대 28(반대)로 리나 칸의 연방거래위원장(FTC) 임명안을 가결했다. 야당인 공화당이 다수를 점한 상원에서 이처럼 큰 표 차이로 인준안이 통과된 것은 이례적이었다. 기업들의 반독점 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의 수장에 '매파'로 평가받는 인사가 상원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는 것은 뉴스 그 자체였다. FTC 위원장은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이 득실거리는 미국에서 이들의 목줄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강력한 파워를 갖는 자리다. 올해 32세에 불과한 그가 역사상 최연소 위원장이 됐다는 것보다 그가 펼칠 반독점 정책이 과연 세계 경제를 어떻게 흔들어 댈 것인지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1989년 영국 런던에서 파키스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리나 칸은 11살 때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했다.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예일대 로스쿨에 다니던 2017년이다. 학내 학술지인 『예일 법학저널(Yale Law Journal)』에 내놓은 그의 96쪽짜리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태동한 독점금지법의 근간 자체를 흔들어 놨다. 그는 논문에서 가격 인상 등으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때만 독점 규제가 작동해야 한다는 기존의 시각에 반대했다. '소비자의 효용이 커지도록 하는 게 반독점의 유일한 목표가 돼야 한다'는 주류 시카고학파의 논거를 단번에 깼다.

록펠러와 모건 패밀리로 상징되는 20세기 초 미국의 무법천지 금산복합 독점 체제를 깨기 위해 마련된 것이 독점금지법이었다. 독점금지법의 초점은 지배력 집중을 깨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이러한 기조는 시카고학파가 주류 경제학을 이끌면서 더욱 말랑말랑해졌다. 그런데 기존 제조업 중심 경제가 ICT(정보통신기술)가 대세가 된 경제로 바뀌면서 기존 반독점 규제에는 구멍이 숭숭 뚫리기 시작했다. 리나 칸은 가격을 낮춰 소비자 편익만 추구해 아마존과 같은 독점적 기업을 방치한다면 시장이 왜곡되고 그 결과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소비자 편익이 아닌 기업의 지배력을 제어하는 문제로 반독점 규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존을 언급한 이유로 그는 '아마존 킬러'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리나 칸이 아마존이라는 기업을 콕 집어 거론한 것은 전통 제조 기업이 아닌 플랫폼 기업이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공룡으로 컸고, 그들의 독과점이 경쟁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전 세계 경제의 중심이 돼 버린 구글과 아마존, 페이스북(현 메타), 애플 등 소위 GAFA를 독점 기업으로 판단한다. FTC 위원장이 되기 전 그는 미 의회에 낸 보고서에서 GAFA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플랫폼을 구조적으로 해체해야 한다는 좀 '과격한' 의견이었다. 그런데도 친기업적인 공화당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그들이 보기에도 혁신이라는 보호막 속에서 자란 GAFA로 대변되는 플랫폼 기업들의 해악이 심상치 않았다고 본 것이다. 아마존이 자신들의 독점 여부를 조사하는 FTC에 리나 칸에 대한 기피 신청을 낸 것만 봐도 플랫폼 기업들이 어마어마한 '리나 칸 포비아(공포)'에 휩싸여 있음을 보여준다.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반독점 규제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자 이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GAFA에 비견할 바가 못되지만, 한국도 이미 플랫폼 공화국이 돼 가고 있다. 쿠팡이 이커머스 시장을 장악하고, 네이버와 카카오가 모든 사업을 섭렵해 가고 있다. 골목상권 침해와 갑질, 노동권 침탈 등의 각종 사회적 문제도 플랫폼 기업들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국내 플랫폼과는 또 별개로 구글과 애플 등은 한국 시장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한민국의 반독점 규제를 전담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핵심 타깃도 플랫폼 기업이 돼 가고 있다. 하지만 기존 공정거래법만으로 공룡이 된 플랫폼 기업을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정부가 내놓은 대안이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 제정안이다. 공정위가 법안을 제출한 지 1년여간 지났지만, 여전히 논의만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말 국회 정무위원회 소위에서 규제 대상 기업들을 추리는 듯 했지만,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공정위에 더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시어머니로 끼어들면서 중복규제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다. 기업들의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원초적' 지적들도 여전하다. 지난 국회 국정감사에서 네이버와 카카오를 상대로 난타를 했던 의원님들은 온데간데없다. 한 달에도 여러 건의 투자와 인수·합병(M&A), 회사 설립 등을 통해 몸집을 키우면서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깊숙이 침투해 가는 플랫폼 기업들의 상황을 여의도에서는 아직도 감지를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는 사이 다국적 플랫폼들도 우리 생활 깊이 파고들고 있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독점에 따른 피해는 '소비자 편익'이라는 달콤한 말들로 포장돼 커지고 있다. 한국에 리나 칸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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