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섬유회사인 한성실업에서 6년간 일하다 나온 김우중은 1967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직원 5명의 대우실업을 세운다. 당시 그의 나이 30세. 15년 뒤 그는 대우그룹의 회장이 됐다. '세계경영'을 기치로 전 세계를 누비며 영토확장을 한 결과 대우그룹은 현대그룹에 이어 재계 2위의 공룡이 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려 1998년 그룹이 해체되기 직전 대우그룹의 수출액은 186억달러에 달했다. 당시 우리나라 총수출액의 14%를 대우그룹 혼자 만들어 냈을 정도였다.

IMF 직격탄에 유동성 위기를 맞아 1998년 8월 대우그룹의 41개 모든 계열사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김우중의 시대는 그렇게 허망하게 저물었다. 전 세계를 상대로 쭉쭉 뻗어나가는 듯했던 대우그룹 계열사들은 새로운 주인이 된 은행들의 '칼춤'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 기업 중 하나가 대우건설이었다. 지금까지 '대우'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기업은 대우조선해양과 대우건설뿐이다.

김우중 회장은 1973년 도급순위 600위권의 영진토건 영업권을 인수해 직원 12명의 대우건설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후 대우건설은 고속철을 탄 듯 거침없는 성과와 성장세를 보였다. 4년 뒤 당시 서울의 중심이었던 서울역의 건너편에 대우그룹의 상징과도 같은 '대우센터'를 짓는다. 지하 2층, 지상 23층의 대표적 랜드마크 건물이었다. 몇 해 전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의 주 무대도 대우센터였다. 한국 경제의 압축성장을 상징하는 건물이기도 했다.

그룹 체제가 갖춰진 1981년 대우그룹의 핵심 기업인 대우실업과 합병해 ㈜대우의 건설 부문이 된 대우건설은 김우중의 '세계경영'과 보조를 맞추듯 전 세계 건설 현장으로 뛰어든다. 중남미의 에콰도르와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중동의 이란과 아랍에미리트, 리비아는 물론 동남아시아의 방글라데시까지 그동안 손길이 닿지 않았던 곳까지 침투해 공사를 따내고 '대우'의 흔적을 남겼다. 대우그룹이 해체돼 채권단의 손에 넘어가기 전까지 대우건설은 그렇게 해외로 손길을 뻗어나갔다.

채권단 손에 넘어간 뒤 새로운 주인을 맞기까지 걸린 시간은 6년이나 걸렸다. 2005년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매각되기까지 긴 시간을 버텨야 했지만, 대우건설의 경쟁력은 굳건했다. 3조원이 넘는 엄청난 빚 부담이 가슴을 짓눌렀지만, 임직원들은 고통 분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매출 증가 속도는 가팔랐고, 재무구조 개선 속도 역시 빨라졌다. 브랜드 '푸르지오'는 대우건설 제2의 도약에 힘을 실어줬다.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혔던 대우건설은 그렇게 시공 능력 1위의 기업이 됐다. 하지만, 우량기업으로 거듭난 대우건설을 빚으로 사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결국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 대우건설은 허망하게도 다시 채권단의 손으로 들어갔다.

대우건설은 '건설업계의 사관학교'라 불릴 정도로 맨파워가 강한 곳이었다. 직원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했다. '해외사업은 우리가 최고'라는 자존감 역시 강했다. 국내에서도 정비사업은 물론 토목공사까지 대우건설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자부심도 대단했다. 하지만 2010년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산업은행으로 주인이 다시 바뀐 이후 직원들이 갖던 그런 자부심과 자존감은 급격히 떨어졌다. 건설업계를 주름잡던 실력 있는 엔지니어들도 하나둘씩 떠나갔다. 젊은 인재들도 경쟁사들이 뻗는 손길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맨파워와 기술력이 사실 거의 전부인 건설업계에서 대우건설은 많은 것을 잃어갔다. 그럼에도 건설업계 '빅5'의 타이틀을 잃지 않는 것을 보면 대우건설의 경쟁력은 여전히 대단했다.

김우중이 세상을 떠난 지 딱 2주년이 되던 지난 9일 대우건설의 대주주인 KDB인베스트먼트는 새로운 주인에게 회사를 넘기는 계약서에 사인했다. 호남의 중견 건설기업인 중흥그룹이 대우건설을 품에 안았다. '대우그룹-금호아시아나그룹-산업은행(KDB인베스트먼트)'에 이어 4번째 새 주인이다. 영욕의 49년 세월을 거쳐온 대우건설이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잡을지, 아니면 또다시 수난의 시대로 들어설지는 현재로선 예측할 수 없다.

대우건설 내부 직원들도 기대 반, 걱정 반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단순히 증흥그룹이 자신들보다 규모가 작은 기업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다. 건설업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확산 속에서도 큰 피해를 보지 않은 업종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수주 산업 특성상 그 파급 효과는 2~3년 뒤가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당장 드러나지 않고 지연되고 있을 뿐이란 얘기다. 실제 2~3년 뒤 그 리스크가 현실화할지는 건설업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연된 위험을 얼마나 선제적으로 잘 관리할지 여부가 생존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대우건설의 새로운 리더십도 그 시험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대우건설의 역사에서 다시는 '영욕'이란 말이 쓰이지 않아야 한다. 그간 고생해 온 대우건설 직원들도 그런 것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대우건설 직원들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pisces738@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0시 34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