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팬데믹은 우리의 삶과 노동에 대한 개념을 바꿨다. 재택근무가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사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결과적으로 모두가 사무실에 함께 있지 않아도 기업이나 기관이 큰 문제 없이 돌아간다는 점을 보여줬다. 최근 여러 기업은 전염력 강한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으로 직원 출근율을 되도록 낮추려고 애쓰고 있다. 이는 업무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은 점이 증명된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제는 노동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등장한다. 팬데믹이 더 벌린 사회 양극화와 자산시장의 변화 때문이다. 성공의 통로를 이제는 일보다는 투자로 여기는 세대가 자라고 있다.







'똘똘한 한 채'가 대표하는 부동산 시장의 활황은 노동자 모두의 가슴 속에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는 씨앗을 심었다. 이 씨앗은 전염병 확산 이후 실물 경기를 살리기 위해 주입된 시중 유동성 덕분에 제대로 싹을 틔웠다. 국내 증시를 '韓장', 미 증시를 '美장'이라고 부르는 '동학개미'와 '서학개미'가 양산됐고, 보통 예금에 고이 묻어두던 연금 투자금을 너도나도 상장지수펀드(ETF)에 태웠다. 국내 ETF 시장은 2년 만에 20조가 불어난 73조 원이 됐으며 이런 속도면 100조 원 규모 도달도 꿈이 아니게 됐다. 서학개미가 보유한 미국 상위 50개 주식의 규모만 54조 원에 달한다. 요즘은 목표한 자산 규모를 달성해서 밥벌이에서 은퇴하는 파이어족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파이어족은 미국 고용시장 구조까지 바꾸고 있다.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회의록에는 경제활동참가율이 팬데믹 이전 수준보다 낮은 배경이 등장했다. 전염병 우려와 돌봄 산업의 인력 부족 탓에 가정에서 돌봄 수요가 증가한 것 외에도 가계의 건전한 대차대조표(healthy balance sheets for households)가 등장했다. 팬데믹 기간 노동자의 복귀가 늦춰지는 요인으로 풍족한 실업수당과 정부 지원금 등이 주목받았는데 이제는 부동산과 증시 등의 자산 가격이 높아진 영향이 조기 은퇴의 공식 이유로 언급된 것이다. 실물과 고용시장을 살리는 것이 최종 목표인 연준 처지에서 높은 자산 가격이 되레 장애가 된 셈이다. 그렇다면 연준이 작정하고 부동산과 주가를 망가뜨려야만 할까. 1994년 채권 대학살의 시기 연준은 1년 만에 기준금리를 3%에서 6%로 인상한 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런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자산 가격이 폭락한다면 변동성 확대에 따라 금융 시스템에 대한 위험이 높아지는 것을 중앙은행이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돌고 돌 듯이 노동시장도 돈다. 미국 노동시장이 보여주듯이 굳이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부유해질수록 일을 덜 하고 싶은 욕구가 커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하지만 노동력 부족은 결국 임금 상승을 초래하고, 인플레이션 상승을 고착시킨다. 이는 은퇴한 노동자들을 어쩔 수 없이 다시 경제활동의 장으로 불러낼 여지가 있다. 또 인플레는 자연스레 자산 가격에도 위협 요인이다. 투자의 시대라고 하지만 새해 자산시장은 썩 좋지 않고, 늘 예상치 못하게 돈 써야 할 곳이 생기는 게 우리 삶이다. 그래서 많은 금융시장 전문가들이 투자보다는 역설적으로 꾸준한 노동 소득을 강조한다. 수명이 빠르게 늘어나는 데다 소위 투자 대박을 터트리는 경우는 늘 극소수에 불과하다. 투자와 노동 모두 소중하다. (투자금융부장 이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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