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글로벌 채권시장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마뜩하지 않다. 파월 연준 의장이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채권시장의 변동성을 촉발하고 있어서다. 파월은 연임이 확정되지 않았던 지난해 11월말까지 초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할 것처럼 발언했다. 연임이 확정된 뒤 파월은 매파로 돌변하면서 글로벌 채권시장을 뒤흔들었다.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은 파월의 매파 변심 이전까지 연 1.4% 수준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불과 넉달만에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은 2.3%수준까지 훌쩍 뛰었다. 파월이 초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거둬들이겠다고 연일 강조하면서다. 숨이 가쁠 지경이다.
 

 


<미국채 10년물 수익률 일봉 차트:인포맥스 제공>

같은 기간 'MOVE 지수(The Merrill lynch Option Volatility Estimate Index)'도 급등했다. MOVE 지수는 글로벌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미국 국채 옵션 가격을 기초로 국채 가격의 변동성을 산정한 지수를 일컫는다. 연초까지 80 언저리였던 MOVE 지수는 지난 7일 한때 140 수준으로 치솟기도 했다. 최근 들어 105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연초대비 무려 25%나 증가한 수준이다. 이 지수의 상승은 미 국채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치가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월의 말 바꾸기 혹은 변심은 불가피한 측면이 강하다. 소비자물가지수(CPI) 등 핵심 물가 지표가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월가는 지난해 6월에 나온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발언을 새삼 주목하는 분위기다. 옐런 장관이 당시에 통화정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례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옐런 장관은 연준 의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가 금리 인상 관련 발언을 했을 때 파장을 모를 리 없다.

옐런은 당시 "경제가 과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금리가 다소(somewhat) 인상되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추가적인 지출이 경제 규모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을지 모르지만, 이는 '약간의 매우 완만한(some very modest)' 금리 인상을 야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옐런에 대한 월가의 믿음은 남달랐다. 당시에 옐런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대형 기술주들이 급락세로 돌아서고 나스닥지수는 한때 1.8%나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미국 행정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 연준 의장, 재무부 장관 등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경제 관련 주요직을 세 개나 거머쥔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경제학자라는 옐런을 시장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일부 시장 참가자들은 옐런의 발언을 의도된 실수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경제 관료의 통화정책 발언이 금기시된다는 점을 모를 리 없는 옐런이 명토박아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월가는 파월 등 연준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과소평가되고 있으며 연준의 논리구조에도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하버드대학교 총장까지 지내며 미국 경제학계에서 황태자급 대우를 받는 로렌 서머스 전 재무무장관은 당시에도 연준이 선제 행동에 나서라고 줄기차게 경고했다. 수요견인 인플레이션 압력까지 가중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연준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서머스 등은 가계의 가처분 소득 증가와 펜트업 효과(Pent-up effect)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펜트업 효과는 억눌렸던 수요가 급속도로 살아나는 현상이다. 보통 억제됐던 수요가 외부 요인 해소와 함께 분출하는 특징을 가진다.

세계 최대의 채권 운용사인 핌코의 전 최고경영자(CEO)였던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고문도 파월 등 연준을 공격하는 선봉에 섰다. 그는 미국의 속담을 인용해 "연준이 변호사처럼 행동한다"고 지적했다. 변호사 출신인 파월을 정조준한 표현이다. 그는 언론 기고 등을 통해 변호사들은 자신들의 견해에 대한 근거가 부실할 때도 100% 확신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속담을 소개하면서 연준을 비판했다. 그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는 각종 지표가 누적되고 있지만, 연준은 변호사처럼' 일시적'이라는 확신에 찬 주장만 거듭한다고 지적했다.

파월을 비롯한 연준 위원들은 1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50bp 이상 올리는 빅스텝의 필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시장이 그동안 가장 두려워했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고 있다.

결과론이 될 수도 있지만 선제적 대응을 주문했던 목소리가 옳았다는 점을 연준도 인정한 셈이다.

옐런 미 재무장관이 지난해 6월 FOMC를 앞두고 소폭의 금리 인상이 미국 경제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발언한 배경도 이제야 숨은 그림의 얼개를 드러냈다. 옐런은 의도된 말실수를 통해 파월 등 연준이 좀 더 선제적으로 나서라고 시사점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루아침에 매파로 돌변한 파월과 비둘기파 연준 위원들을 보면서 옐런이 한 수 위였다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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