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 줄 선 주주들

(서울=연합인포맥스) 올해 주주총회의 핵심 이슈는 이른바 소액주주들의 반란이다. 개인 주주들은 주총장에 직접 참석해서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고, 그 내용을 온라인으로 다른 주주들과 공유하면서 세력을 형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액주주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주총에서 표 대결을 시도한 사례도 나왔다. MZ세대들은 개인 일정을 쪼개 주총장에 가서 요구사항을 제시했고, 일부 주총장에선 송곳 같은 질문으로 오너나 경영진의 진땀을 빼게 하는 장면도 심심찮게 연출됐다. NC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는 야구단 운영과 수백억 원이 드는 FA 선수 영입에 대해 한 개인 주주의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동학 개미 운동 이후 주식시장에 대거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은 과거 주총꾼, 거수기, 박수부대라는 오명을 듣던 투자자들과 확연히 다르다. 이들은 이제 더이상 주식투자를 사고팔아 이익을 남기는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기업가치를 따져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처를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는 경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주주로서 회사를 응원함과 동시에 잘못된 행동에 대해선 감시와 지적을 서슴지 않는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이러한 개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한다. 이번 주총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남긴 곳들이 여럿 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SM엔터테인먼트와 표 대결을 벌여 자신들이 추천한 후보를 감사로 선임토록 했다. SM 최대 주주인 이수만 총괄 PD가 운영하는 라이크기획에 SM이 일감을 몰아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혔다는 이유에서다. 차파트너스운용은 사조오양에 자신들이 선정한 감사위원이 선임되도록 했고 안다자산운용은 SK케미칼의 배당확대와 자사주 매입 소각을 하도록 유도했다.

개인 주주들의 요구가 강해지고 집단화되면서 시장 전반에 과거와 다른 문화가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목소리가 커진 개인 주주들을 보며 이미 기업들은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주주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는 시대가 됐고 이들의 적극적으로 요구를 받아 경영에 담아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사례가 유독 도드라지게 나타났다.







연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기업들이 왜 개인 주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을까. 개인투자자의 급증과 주총 인프라의 혁신, 달라진 사회적 분위기가 그 이유일 것이다. 지난해 기준 개인투자자는 1천384만명으로 2019년(618만명)과 2020년(919만명)에 이어 지속적인 증가추세에 있다. 기업들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개인투자자들의 수가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2~3년간 인프라의 개선으로 전자투표를 채택하는 회사가 많아졌다. 개인들은 굳이 주총장에 가지 않더라도 자신의 의사를 표결로 표시할 수 있으며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며 표심을 결정하기도 한다. 전자서명으로 주주권을 위임할 수 있는 휴대전화 앱도 개발돼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모으는데 보탬이 된다고 한다.

아울러 기업을 상대로 개인들의 단합된 힘이 집결됐을 때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온다는 점을 기업들은 인식하고 있다. 그간 미스터피자와 대한항공, 남양유업 등 갑질 이슈에 휘말린 기업들은 큰 화를 치렀다. 일부는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는 악덕 기업들이 불매운동에 시달리듯이 주주들을 홀대하는 기업도 이제 설 땅이 점점 좁아지게 됐다. 특히 MZ세대들을 필두로 한 개인들의 투자인식 변화는 향후 기업들이 주주가치를 제고하는데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환경변화 속에 올해 주총에서 대기업들의 주주제고 정책은 눈에 띈다. SK는 시가총액 1% 이상의 자사주를 매년 매입할 것을 주주들과 약속했고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주총에서 주주가치 제고를 공언했다. 포스코는 배당금을 두 배 이상 늘렸고 삼성전자와 LG전자 등도 배당을 소폭 증액했다.

소액주주의 증가와 이들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투자문화의 개선 효과를 불러오는 것은 물론 자본주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은 주식시장의 선진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취재본부장)

jang7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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