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 몸살을 앓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촉발한 원유 등 원자재 가격 폭등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우고, 세계 물가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무려 8.5%나 뛰었다. 1981년 12월 이후 40년여 만에 최고 상승률이다. 국제 유가 급등에 미국에서는 그동안 체감할 수 없었을 정도의 수준으로 휘발유 가격이 뛰었다.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3월 소비자물가는 무려 4.1% 상승했다. 10년 3개월 만에 4% 숫자를 보게 됐다. 3월에만 독일은 7.3%, 이탈리아는 6.7% 올랐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19개국의 연합체인 유로존의 3월 CPI는 7.5% 상승해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신흥국인 아르헨티나와 터키는 올해 들어서만 물가가 50% 넘게 상승했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물가 타깃을 대체로 2.5% 안팎으로 설정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준이다.

가공할 만한 인플레이션 압력은 결국 금리 인상과 긴축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돈줄을 조이지 않는 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감당하기 힘들다. 고물가는 고통스럽게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속도다. 금리를 얼마나 빠르게 올릴 것인가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다. 하지만, 금리라는 변수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는 데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자산과 부채, 성장 등 모든 영역에 끼어든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글로벌 교역에 따른 대외 의존도가 높고, 환율 변동에 따른 외부자본의 유출입이 활발한 나라에서는 긴축이 더욱 고통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우리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올해 말 중립 금리 수준을 석 달 만에 1.9%로 높였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그 수준을 3%대 이상으로 올릴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올 정도다. 말 그대로 빅 스텝(Big step)의 페달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현재의 인플레이션 수준을 따라가는 정도에 불과하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진정되고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조금이라도 안정세를 찾는다면 속도가 지체될지도 모르지만 그 또한 불확실성이 크다. 그렇다 치더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풀린 돈을 언젠가는 거둬야 하는 만큼 긴축은 불가피하다.

미 연준을 비롯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상을 통한 긴축의 속도를 어떻게 잡아갈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통상 인플레이션 수준을 앞서가는 수준으로 금리를 올린다면 당장의 고통은 클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새로운 성장을 위한 기초를 다지는 약(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결국 잠재성장률을 추가로 더 높이지 못하는 '지체된 긴축'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는 인플레이션 압력 수준이 워낙 높아 빅 스텝으로 가더라도 그저 뒤따라가는 땜질밖에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많다. 결국 중앙은행들의 스탠스가 향후 성장에 방점을 두느냐 현상 유지에 중점을 두느냐를 결정짓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금리 인상은 고통 분담과 지체된 불안의 갈림길을 결정짓는 변수가 되고 있다.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와 새로운 수장을 맞이하는 한국은행의 고민은 그래서 클 수밖에 없다.

한은 총재로 지명된 이창용 후보자는 지난 7일 "잠재성장률 제고를 위해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팬데믹 과정에서 한계기업에 투입된 자원들이 새로운 성장동력 및 신사업 육성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자의 이런 발언은 강력한 긴축의 신호로 읽힌다. 코로나19 사태로 풀린 대규모 유동성을 거둬들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고통이 있더라도 무너질 기업들을 가려내는 옥석 가리기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후보자의 발언을 빅 스텝 수준 이상의 가공할 금리 인상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일단 방점을 잠재성장률 제고와 구조조정에 찍고 있는 것은 강한 긴축 의지를 보여줬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중에 풀린 채 만기 연장과 상환유예가 반복된 133조원의 대출을 거둬들일 수 있으니 "준비는 하시오"라는 선제적 시그널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좋게 말해 연착륙을 위한 시그널이지만, 133조원 가운데 실제 얼마나 부실로 연결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에 연착륙 또한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수 있다.

빠른 금리 인상을 통한 긴축 과정에서 더욱 고통스러운 대상은 아무래도 재무 여력이 약한 중소·중견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 역설적인 '코로나19 수혜'를 입은 대기업들은 위기의 순간에 되레 현금을 더 쌓는 호기를 누렸다. 저금리 혜택을 통해 조달에서도 혜택을 받았고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 물론 금리 인상을 통해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지만, 그나마 상황은 낫다, 최근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기준금리가 1% 오르면 중소기업의 대출금리는 0.64%, 대기업은 0.57%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적으로 보면 중소기업의 대출 가산금리는 1.69%, 대기업은 1.17%로 기울이는 중소기업이 더 컸다. 그만큼 이자 부담이 심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본시장 등 직접금융을 통한 자금조달은 신용도가 월등한 대기업이 훨씬 유리하다. 지난해 대기업의 직접금융은 70조6천억원에 달했지만 중소기업은 5조2천억원에 그쳤다. 다시 말해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을 거의 전적으로 은행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기업의 은행 대출은 179조3천억원인데, 중소기업은 886조4천억원에 달했다.

금리 인상에 따른 긴축의 속도가 빨라진다면 은행들은 더는 만기 연장과 상환유예와 같은 호의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옥석 가리기를 통해 대출을 회수하고, 갚지 못하면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을 들이댈 것이다. 최근 은행들이 이에 대비해 부실채권(NPL) 조직을 정비하고, 대출 회수와 부실채권 처리 방향 등을 위한 사전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분명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얼마의 기간이 될지 모르지만 진짜로 고통스러운 상황이 이제 시작됐다. 정부와 한은, 금융권, 기업 등 모든 경제주체가 긴밀한 대응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잘 짜인 계획이 없다면 고통의 기간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기업금융부장)

pisces738@yna.co.kr



※쿰파니스는 라틴어로 '함께(cum)'와 '빵(panis)'이 합쳐진 말로 동료나 친구를 뜻하는 컴패니언(Companion), 기업을 뜻하는 컴퍼니(Company)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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