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부가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은 소상공인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추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기간 내놨던 공약을 이행한다는 차원이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반대하지 않는 만큼 국회 통과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추경의 목적성에 대한 공감이 크고, 정부의 재정 부담이 크지 않다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번 추경안을 보면 고개가 갸웃거리게 하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작년 본예산 편성 때보다 올해 세금이 53조3천억원이나 더 들어올 것이란 정부의 예상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불과 넉 달 전 1차 추경을 편성할 때 국채 발행이 아니고서는 재원을 마련할 방안이 없다며 완강한 입장을 보이고, 규모를 최소화했던 재정 당국의 '결기'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보여 추경은 물론 국채 9조원 어치를 갚을 수도 있다고 한다.

기업들의 실적과 비교하면 정부가 추계한 '초과 세수'는 가히 '어닝 서프라이즈'급이다. 하지만 기업은 이익을 목적으로 한 존재이기에 어닝 서프라이즈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주주는 물론 임직원들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갈 여지가 있고 투자재원을 더 확보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그렇다. 하지만 정부는 기업과 다르다. 들어오고(세입), 나가는(세출) 게 명확해야 한다. 돈의 씀씀이를 허투루 할 수 없다. 그리고 정부는 이익을 내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2년간의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면서 재정 확대를 외쳐온 정부의 입장은 명확하게 '허언'이었던 셈이다. 들어올 세금 추계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어디에 써야 할지도 제대로 계획하지 못한 것이다. 극도로 보수적이면서도 소극적인 재정 운용을 한 것과 다름없다.

상장 기업들의 올해 1분기 실적 발표가 마무리됐다. 코로나19의 긴 터널 속에서도 많은 국내 기업들은 '어닝 서프라이즈'급의 실적을 내놨다. 코로나19뿐 아니라 지속적인 공급망 교란과 원자잿값 급등, '빅스텝' 본격화 등 악재가 널려있지만, 잘 버텨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가 본격화하고 있고,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확산은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상품을 많이 팔더라도 이익은 되레 줄어드는 역진적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차라리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이 좋았을 수도 있겠다고 말하는 기업인도 있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정부의 서프라이즈급 초과 세수를 보면서 착잡하다. 정부의 2차 추경안을 보면 더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 법인세 규모는 무려 29조1천억원에 달한다. 올해 본예산을 짜면서 정부가 예측한 법인세 규모는 74조9천억원이었지만, 무려 104조1천억원으로 늘어날 것이란 게 정부의 예상이다. 물론 지난 2년간의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기업들이 장사를 잘해 이익을 늘리고, 그에 따라 세금을 더 낼 수 있게 된 상황을 어찌 보면 다행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길을 예측할 수 없었던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대규모 재정 지원 없이 엄청난 성과를 낸 기업들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2017년 59조2천억원이던 법인세 규모는 2018년 70조9천억원, 2019년 72조2천억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년 55조5천억원으로 급감했지만, 역설적인 코로나19 특수 속에 기업 실적이 개선되면서 지난해에는 70조4천억원으로 다시 늘었다. 그런데 불과 1년 사이에 30조원 가까운 규모로 법인세가 늘어날 것이란 게 정부의 예측이다. 이런 추이는 기업들의 실적이 대폭 개선된 게 일차적인 이유이겠지만, 이면에는 법인세율이 높아서 벌어진 측면도 분명히 있다. 2018년 법인세가 사상 최초로 70조원을 넘어선 것은 그해 세법개정을 통해 법인세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한 탓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1.2%보다 높은 25%다. 일본(23.2%)이나 미국(21%), 독일(15.8%)과 비교해도 높다.

코로나19 기간 주요 선진국들은 막대한 재정지원에 더해 대규모 세제 혜택을 통해 기업들을 지원했다. 물론 우리 정부도 각종 세금감면 등을 통해 우회 지원하긴 했다. 기업들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어려움을 딛고 큰 성과를 냈고, 그에 맞춰 세금도 역대급으로 내게 된 것이다. 사업을 잘하는 것이 나라를 살리는 길(事業報國)이라는 게 우리나라 기업인들에게는 일종의 숙명이긴 하지만, 열심히 일 한 성과를 세금으로 다 가져다 바쳤다는 자괴감을 가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경영환경이 더 녹록하지 않다. 본격적인 긴축 국면은 기업들의 어깨를 움츠러들게 할 것이다. 공급망 문제는 해소될 기미가 없고, 원자잿값 급등 속에 자원은 무기화하고 있다. 기업들의 성과가 이전만 못 할 수 있다는 전망도 슬금슬금 나온다. 써야 할 돈은 여전히 많은데 정부가 걷어가는 세금이 그대로라면 기업들엔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다. 국채를 찍지 않기 위해 사활을 건 재정 당국이 꺼내든 초과 세수 카드가 기업들의 법인세 인하 요구 목소리를 키우게 하는 단초가 될 것 같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대표적인 법인세 인하론자다. 하지만 써야 할 돈이 많은 정부는 국채를 발행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기업들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궁금해진다.

(기업금융부장)

pisces738@yna.co.kr

※쿰파니스는 라틴어로 '함께(cum)'와 '빵(panis)'이 합쳐진 말로 동료나 친구를 뜻하는 컴패니언(Companion), 기업을 뜻하는 컴퍼니(Company)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1시 06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