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우리나라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은 어디일까. 당연히 '넘버원' 기업인 삼성전자다. 세계 최대 수준의 반도체 제조시설은 물론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가전 생산라인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규모의 전기가 필요하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전력 사용량은 18.41테라와트시(TWh)에 달했다. 삼성디스플레이까지 합치면 25TWh를 넘는다. 이는 SK하이닉스(9.21TWh)의 3배에 육박하고, 전력 사용 상위 5대 기업(47.67TWh)의 절반을 넘어선다. 말 그대로 '전기먹는 하마'다. 삼성전자는 평택에 2030년까지 393만㎡(약 120만평)의 부지에 반도체 생산라인 6개 동과 부속 동을 짓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실제 양산 체제로 들어가면 필요 전기량은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생산 능력이 더욱 커질수록 삼성전자의 고민도 점증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 초격차 기술을 두고 벌이는 경쟁은 본업(本業)이라 치자. 하지만 기술 우위를 확보하더라도 제품을 만들기 위한 양산 체제로 들어가면 막대한 전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만만치 않다. 더군다나 이제는 화석연료로 생산한 전기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을 활용한 재생에너지를 제품 생산에 써야 하는데 수급은 원활하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넷제로' 캠페인의 확산은 삼성전자에 어마어마한 청구서로 되돌아오고 있다.

"큰 선언을 하게 될 것이다". 지난 5월 3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32회 삼성 호암상 시상식에서 한종희 부회장(DX 부문장)이 한 말이다. 선언의 대상은 'RE100' 가입이다. RE100은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전 세계 372개 기업, 국내 19개 기업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RE100 가입 여부는 글로벌 기업은 물론 산업계에 초미의 관심사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말을 아껴왔다. 하지만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엄청난 청구서가 돌아오기 전에 '어음'이라도 발행해야 한다. 최소 언제까지는 탄소배출 제로 전력을 통해 제품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놔야 한다. RE100 가입은 그 시작점이 될 것이다.

RE100은 강제 규범이 아니다. 하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장사를 하려면 RE100의 기본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실상의 강제성을 띤 캠페인으로 변하고 있다. 애플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가 먼저 RE100에 가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라는 것은 이제 더는 권고 사항이 아닌 강제적 조건이다. 현재 RE100에 가입된 기업을 국가별로 보면 미국이 95개, 일본이 72개, 영국이 48개에 이른다. 모두 우리 기업들의 고객들이다. 구글은 이미 2017년에 재생에너지 100% 목표를 달성했고, 애플과 페이스북도 구글의 뒤를 따랐다. BMW와 인텔 등은 100%에 육박하는 목표를 달성 중이고, 휴렛팩커드도 50%를 넘어섰다. BMW의 경우는 부품사들에도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부품을 만들어 공급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지속가능성을 높여 생존력을 확보하려는 몸부림들이다. 이러한 기류는 글로벌 공급망에도 엄청난 압박 요인이 되고 있다. KDI공공정책대학원이 에너지경제연구원 등과 지난해 9월 발표한 'RE100이 한국 주요 수출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우리 기업들이 RE100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주력 수출 제품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자동차 수출액은 각각 31%와 40%, 15%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는 이러한 태풍의 한 가운데에 서게 된다. 장사를 접기 싫으면 빨리 RE100에 가입하고 원칙을 이행하라는 압박인 셈이다. 최근에는 삼성전자와 거래 또는 투자로 연결된 글로벌 금융기관들도 RE100 가입을 포함한, 탄소중립 로드맵 발표를 서두르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종희 부회장이 '큰 선언'이라는 말로 입을 연 것도 더는 미룰 수 없는 숙제가 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삼성전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삼성전자의 해외 사업장은 대부분 재생에너지 100% 목표를 달성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 사업장이다. 삼성전자가 재생에너지를 확보해 생산에 활용하고 싶어도 원하는 만큼의 수급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삼성전자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감당해야 할 수조 원의 비용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정부가 녹색프리미엄, 제삼자 또는 직접 전력거래계약(PPA), 재생에너지인증서(REC) 거래 등 '한국형 RE100' 제도를 운용 중이지만, 가격변동 조절이나 중개 기능 등에서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기꺼이 비용을 투입해 재생에너지를 확보하고 싶어도 현실적 여건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내부적으로 RE100 가입 이후 목표 달성에 이르기까지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변수를 돌려보는 시뮬레이션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관심이다. 초격차 기술에 더해 향후 탄소중립 로드맵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도 삼성전자의 기업가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의 18%에 달하는 매출을 내는 거대 기업이다. 삼성전자가 내놓을 탄소중립 로드맵은 국가 경제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부도 관심을 두고 지원할 것은 충분히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뒷받침이 부족하다면 삼성전자조차도 재생에너지를 찾아 한국을 떠날지 모른다.

(기업금융부장)

pisces738@yna.co.kr



※쿰파니스는 라틴어로 '함께(cum)'와 '빵(panis)'이 합쳐진 말로 동료나 친구를 뜻하는 컴패니언(Companion), 기업을 뜻하는 컴퍼니(Company)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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