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블록스는 게임이 아니다. 경험이다." 로블록스의 최고경영자(CEO)가 남겼을 법한 이 발언의 주인공은 엉뚱하게도 애플(Apple)이다. 멋진 광고 문구 같지만, 실은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에서 법정 공방 중에 나온 말이다.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맥락은 이렇다. 2020년 8월, 애플은 에픽게임즈가 개발한 인기 게임 포트나이트(Fortnite)를 애플 앱스토어에서 퇴출해 버렸다. 포트나이트가 자체 결제 시스템을 도입해 애플의 수수료 시스템을 편법적으로 우회했다는 명목이었다. 그러자 에픽게임즈는 애플을 상대로 반독점법 위반의 소를 제기한 뒤, 로블록스를 언급하며 애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애플이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는 로블록스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자사 앱만 문제 삼는 것은 차별 취급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애플은 로블록스는 "게임이 아니라 메타버스"인 반면 포트나이트는 게임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양자가 엄연히 다르므로 차별 취급이 아니라는 것이다. 로블록스도 거들었다. 자사의 홈페이지에 있던 '게임'이라는 단어를 스리슬쩍 '경험'으로 수정하는 한편, "로블록스는 메타버스"라고 대외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현재 로블록스는 사실상 메타버스를 상징하는 서비스가 됐다.

메타버스는 게임인가 아닌가. 애플과 로블록스의 확신에 찬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둘러싼 논의는 첨예하다. 국내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메타버스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즉 게임산업법상 게임으로 분류된다면, 게임산업법상 각종 규제의 적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스포츠 강국"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한국의 게임 관련 규제는 매우 엄격한 편이다. 게임 규제의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게임물 등급제다. 민간 기관이 자율적으로 게임 등급을 매기는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사실상 정부 기관이나 다름없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주도하여 등급을 매긴다. 나아가 미국이나 일본은 소비자에게 게임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등급제를 운용하지만, 한국의 등급제는 통제에 방점이 찍혀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등급 분류를 거부하거나 취소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등급 분류를 받지 못하면 게임을 서비스하지 못하기 때문에, 단순히 게임에 대한 정보를 공시하는 정도를 넘어 아예 게임의 출시 여부를 위원회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등급분류제도 자체만큼이나 자주 문제 되는 것이 이른바 "사행성"이다. 게임산업법은 위원회가 아닌 민간사업자로부터 등급분류를 받을 수 있는 자체등급분류제도를 마련하고 있는데, 사행성이 있는 게임의 경우 자체등급분류사업자의 등급분류결정을 직권으로 취소할 수 있다. 한마디로, 위원회가 사행성이 있다고 판단한 게임은 위원회를 통해서든 자체등급분류사업자를 통해서든 국내에서 서비스할 수 없다. 빠져나갈 길이 없는 셈이다.

사행성 게임을 규제하는 것 자체는 물론 정당하다. 문제는 메타버스가 게임으로 분류될 경우 이 "사행성" 요건에 걸려 서비스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메타버스는 자체 생태계가 구축된 하나의 세계이며, 여기에는 유저들이 메타버스 내에서 자유롭게 재화 등을 거래할 수 있는 경제 생태계도 포함된다. 이 경제 생태계는 메타버스가 외부의 현실세계 또는 다른 디지털 세계와 연결되는 접점이기도 하다. 예컨대 로블록스 이용자들은 암호화폐인 '로벅스'를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고, 인게임 아이템을 메타버스 바깥에서 거래할 수 있는 NFT로 지급하는 서비스도 많다. 그런데 위원회는 실무상 "사행성"을 매우 넓게 해석하면서 "게임 외부에서 자유롭게 거래가 활성화할 경우 사행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NFT 아이템을 포함하는 게임의 등급분류를 거부하고 있다. 나아가 암호화폐나 NFT의 지급이 게임산업법에서 금지하는 환전 가능한 "경품"의 지급이라고 보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메타버스"와 "게임"을 공약 전면에 내세우면서 메타버스의 게임성은 다시금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메타버스의 게임인가, 아닌가 하는 물음 자체는 사실 본질적인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된 근본적인 의문은 현행의 게임 관련 법체계와 규제 관행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변화하는 산업 현실에 적절히 대처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본고에서 언급한 문제들 뿐 아니라 지면상 다루지 못한 게임산업, 메타버스 관련 수많은 문제ㆍ규제들에 대한 재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스포츠 강국"을 넘어선 "게임 산업 강국", "메타버스를 통한 4차 혁명 선도"라는 타이틀은 요원하다. 페이커와 류제홍을 비롯한 "명품 선수"들을 배출했지만, 세계적인 "명작 게임"은 손에 꼽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되돌아볼 때다.

(법무법인(유) 충정 조준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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