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뱅크
[촬영 이충원]

(서울=연합인포맥스) 박경은 기자 = 하반기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혔던 현대오일뱅크가 결국 증시 침체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상장 계획을 접었다.

'자이언트 스텝'에 따른 급격한 글로벌 긴축 상황 속에서 증시가 냉각되면서 제대로된 몸값을 받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탓에 상장을 위한 적절한 시점을 다시 모색하기로 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일 이사회를 열어 최근 주식시장 상황과 주가 동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IPO 계획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21일 공시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상장을 통해 10조원이 넘는 몸값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증시 냉각에 기업가치 평가의 비교대상이 되는 주요 정유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적정한 공모가 산정이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상장을 통해 시장에 보여줄 신사업 성장에 대한 '에쿼티 스토리'를 마련하는 데도 여의치 않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유회사가를 넘어선 석유화학 기술기업으로서의 포지셔닝이 필요했으나, 신사업이 전체 사업에서 차지하는 포트폴리오 비중이 시장 기대에 못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받지 못할 경우 기존 대주주가 구주매출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자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상장 계획을 접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에쓰오일 주가 급락 '직격탄'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유력한 비교그룹인 에쓰오일의 주가가 빠르게 하락한 점이 현대오일뱅크가상장 계획을 철회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에쓰오일은 20일 기준 지난달 고점인 12만3천원 대비 24%가량 내린 9만3천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비교그룹의 주가가 크게 하락하면서 현대오일뱅크의 밸류에이션 역시 하향 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에쓰오일의 주가 하락이 원자재 수요 둔화로 정제마진이 급락한 상황에 조정된 점을 고려했을 때, 정유회사 전반의 하반기 주가가 하락세를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당초 현대오일뱅크가 상장을 추진했던 지난해의 경우 에쓰오일의 주가수익비율(PER)과 기업가치 대비 상각전 영업이익(EV/EBITDA) 배수는 각각 7배, 4.9배 수준이었으나 올해는 전년 대비 반 토막 수준인 3.5배, 2.4배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현대오일뱅크가 상장에 도전했던 당시 동종 기업으로 꼽았던 SK이노베이션, GS, 에쓰오일의 EV/EBITDA인 6.5배를 크게 하회하면서, 상장 추진의 동력을 또다시 잃게 된 셈이다.

주관사 선정 당시만 해도 상장을 통해 몸값이 10조원을 넘어서 최대 15조원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상장 심사 기간을 거치면서 목표 시가총액을 7조~9조원 가량으로 하향 조정하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동종 비교대상 기업의 주가가 급락하고, 이후 상황도 우호적이지 않으면서 상장을 강행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IB업계 관계자는 "결국 유가 상승에 따라 제조업 중심의 국내 증시 전반이 역행하는 '정유회사의 딜레마'를 이겨내지 못해 현대오일뱅크가 상장을 중단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두 사이클이 모두 호조를 보이는 기회를 찾기가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석유화학 신사업 부각한 에쿼티스토리…유의미한 실적은 '아직'

현대오일뱅크는 정유회사의 성장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3대 친환경 미래 사업의 비중 확장을 중심으로 에쿼티스토리를 준비해왔으나, 이를 뒷받침할 실적이 부족한 점도 상장의 걸림돌이 됐다.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3월 기준 85% 수준인 정유사업의 매출 비중을 2030년까지 45%로 낮추고 3대 친환경 미래 사업의 영업이익 비중을 70%까지 높인다는 내용의 '비전 2030'을 발표한 바 있다.

다만 아직 화이트 바이오, 친환경 화학소재, 블루수소 등 신사업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한 상황이다.

1분기 실적 자료에 따르면, 현대오일뱅크는 내년께 초임계 바이오디젤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며, 폐플라스틱 사업의 경우 지난 4월 삼성물산과의 사업 협력에 나선 이후 본격적인 성과가 나오기에는 이른 시점이다.

블루수소 사업 역시 연내 생산 공장을 건설할 계획으로, 내년 상반기 상업화를 목표한 상황이다.

일부 상장 추진 기업의 경우 아직 신사업이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더라도 비교그룹에 해당 업종을 영위하는 기업을 포함해 기업가치를 높이기도 하나, 최근 IPO 시장이 위축된 점을 고려할 때 이 역시 어려운 선택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낮아진 밸류에이션·IPO 시장 위축에 HD현대 구주매출도 어려워

당초 모회사인 HD현대는 현대오일뱅크의 공모 과정에서 구주매출을 단행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다만 지난 2월 현대엔지니어링을 시작으로 재무적투자자(FI)와 기존 대주주의 구주매출이 대거 발생하는 경우 투자자들이 청약 참여를 기피하는 경향이 두드러지자, 상장을 위해서는 전량 신주 발행이 불가피하게 됐다.

IB업계 관계자는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최고 실적을 경신하는 등 현금 흐름이 좋은 기업이라 결국 주요 주주의 구주매출이 IPO를 추진하는 원동력으로 본다"며 "현대오일뱅크가 HD현대의 계열사 중 배당여력이 가장 커 구주매출로 얻을 이익을 따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HD현대가 현대오일뱅크의 낮은 밸류에이션을 감수하고 IPO 과정에서 구주매출을 하는 것보다 배당을 통해 얻는 이익이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ge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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