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보수·진보 모든 정권에서 중산층은 몰락하고, 소득과 부의 양극화(경제 양극화)는 악화했으며, 이에 대해 지난 25년 동안 모든 정권은 역사 앞에서 과오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 25년간 모든 정권을 막론하고 왜 경제 양극화는 심화했을까. 주요 원인으로는 경제관료 그룹에 팽배해온 재정보수주의와 이로 인한 정부의 빈약한 선진국대비 사회복지비용 지출성향, 부를 축적한 기득권에 더 유리하도록 불공평한 조세제도를 방치한 것이 꼽힌다. 이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소득 측면과 부의 축적 면에서 모두 양극화를 악화시켰다.

전문가들은 보수와 진보정권을 막론하고 국가재정을 경제관료 주도로 보수적으로 운용했다고 지적한다. 정권마다 접근법의 차이가 있어도 기본적으로 관료 주도의 재정보수주의가 한국의 재정정책을 지배했다는 것이다. 경제관료의 국가재정운용에 대한 사고방식은 글로벌 스탠다드, 즉 유럽의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보수적인 기조로 이어졌다. 여기서 보수적이라는 용어는 실질적으로 정부가 복지지출에 매우 인색하다는 얘기다. 5년마다 진보든 보수든 대통령들은 바뀌지만, 재정정책 운용과 배분은 거의 동일한 성향의 경제관료 집단에 의해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지출비율'(Social spending to GDP ratio)로 보면 관료들은 한국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거의 최악 수준에서 늘 방치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어느 특정한 정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위 진보정권이라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이 비율은 너무도 빈약한 수준이었는데, 2006년에 겨우 6.78%였고 그 이전에는 더 열악한 수준이었다. 진보적이라던 정부 시대의 복지지출비율이 왜 이렇게 궁색한 수준에 그쳤을까. 이유는 국가재정운용의 비전을 참된 경제부국에 합당하게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재정정책과 배분에 관해서는 대통령들이 경제관료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그들에 전적으로 의지했기 때문이다.

복지지출비율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 들어와 2009년에 8.069%, 2012년 8.329%, 2016년 9.87% 등 점차 상승했으나 이 기간에도 멕시코와 함께 OECD에서 완전 바닥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시작인 2017년 10.107%로 처음으로 GDP 10% 이상을 지출하면서 점차 상승해 코로나 직전 시기인 2019년 12.2% 수준으로 올라왔으나, OECD 평균인 20.0%에 비하면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보다 더 열악한 나라는 38개 국가 중에서 튀르키예(12.0%), 칠레(11.4%), 멕시코(7.5%) 오직 세 나라밖에 없다. 한국이 복지지출비율에서 여전히 바닥이라는 입증이다. 가장 높은 나라는 프랑스(31.0%)인데, 다른 주요 유럽국가들은 핀란드(29.1%), 덴마크(29.2%), 벨기에(28.9%), 독일(25.9%), 스웨덴(25.5%), 영국(20.6%) 등이고, 미국은 18.7%로 OECD 평균보다 낮다. 이는 미국의 소득 불평등 지수가 매우 나쁜 편에 속하는 이유 중 하나다.

실상이 이런데도 툭하면 '복지 퍼주기'와 '재정위기'만을 부각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은 그리스 재정위기가 퍼주기식 방만한 복지지출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리스 재정위기는 기득권에 유리한 불공평한 조세제도와 정치경제 부패로 인한 것이 주된 요인이지 복지지출비율이 높아서만이 아니다. 그리스 복지지출비율은 24.7%로 프랑스, 핀란드, 덴마크, 벨기에, 독일, 스웨덴 등보다 훨씬 낮다. OECD 평균인 20%보다 너무도 궁색한 12.2% 정도의 복지지출비율을 가지고 재정위기 가능성을 언급하며 공공연하게 겁박하는 행위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GDP 대비 복지지출비율과 국가채무비율과의 상관관계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즉, 복지지출비율이 최상위그룹에 있지 않지만, 정부부채비율이 유달리 높은 경우들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일본이다. 2021년 일본 복지지출비율은 22.3%로 OECD 평균을 조금 상회하나 국가채무비율은 OECD에서 제일 높은 무려 259%다.

일본은 왜 이렇게 됐을까. 이유는 복지지출에 재정을 직접 투입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복지에 기여할 거라는 기대에서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막대한 재정투입을 반복하고 낙수효과를 기대하며 감세정책을 추구해 일자리 창출을 통해 복지에 기여하겠다는 정책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를 연결하는 다리 건설사업 등 일본 사례는 유명한데, 건설회사의 호주머니만 두둑하게 할 뿐이었다. 이런 두 가지의 재정정책 방향은 실질적인 복지증진 효과는 없고 오히려 소득 불평등과 경제 양극화를 악화시킨다. 유사한 사례가 한국에도 있다. 실질적 경제적 효과가 없는 대표적인 사회간접자본투자가 4대강 사업이라는 견해다. 4대강 사업에 투입된 약 60조원의 재정을 사회안전망 구축 같은 복지에 직접 투입했으면 지금쯤 어땠을까.


한국은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 측면에서 여전히 취약하고 이로 인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무능하게 일시적으로 내주는 일회성 지원금 등에 그치는 저출산 대응정책으로 세계 최저의 출생률을 기록하는 상황 등은 지난 25년간 국가재정정책이 국가 책무를 다하는데 공정하게 집행되지 못했음을 방증하고, 한국 복지시스템의 취약함과 양극화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일례로 문재인 정부 시기에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할 때,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엄청나게 저항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GDP 대비 한국의 정부부채비율 증가 폭은 2019~2020년 기간에 다른 OECD 주요 국가들보다 현저히 낮았다. GDP 대비 한국의 정부부채는 2019년 52.65% (OECD 기준은 한국 정부 통계보다 높게 나옴)에서 2020년 58.66%로 상승했는데, 같은 기간 OECD 평균인 80.01%와 94.65%에 비해 매우 양호하다. 코로나 사태로 대다수 OECD 국가가 국가지원금을 대규모 투입하며 정부부채비율이 GDP 대비 대폭 상승한 것에 비하면 한국의 상승 폭은 매우 작다. 그만큼 코로나 대응을 위한 사회복지지출에 상대적으로 매우 궁색했다는 증거다.

현 정부에 들어서도 관료들은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며 국가의 부채를 미래 세대에 넘겨줄 수 없다는 논조를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의 복지지출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빈약하다. 진실로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고자 한다면 조세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개혁해 세수를 증대하고 이를 통해 재정 건전성도 강화해야 한다. 50년 전에 만들어진 낡고도 낡은 법에 따라 운용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처럼 방만하기 그지없는 재정투입 효율성을 혁신하는 일이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현재 국가적으로 가장 불공정한 조세제도 중의 하나가 빌딩보유자에게 부과하는 재산세율이다. 주택에 대한 공시지가 현실화 비율이 80%에 달하는데 빌딩에 대한 비율은 고작 40% 수준에 머문다. 빌딩을 보유하는 개인이나 법인에 불공정하고 형평성에 어긋나게 막대한 조세 이득을 안겨주는 상황이다.

공시지가 현실화 비율을 현재 40% 수준에서 바로 80% 수준으로 인상한다면 지방자치단체가 복지와 사회안전망 구축에 투입할 수 있는 재정여력은 비약적으로 강화된다. 그만큼 중앙정부의 재정도 여력이 커지고 재정건전성도 당연히 향상된다. 특히, 수도권과 서울시에서 발생할 효과는 막대할 것이다. 또 중앙정부가 수취하는 종합부동산 세수입도 증대돼 국가의 재정건전성 확보에 도움이 될 것임은 물론이다.

빌딩에 대한 공시지가 현실화 비율이 아직도 매우 낮은데, 이상하리만큼 여야를 막론하고 이를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한국에서 실질적인 최고 소득과 부의 집단에 형평성 있게 공정한 조세부담을 지우는 이슈인데 전혀 그러지 못하는 실정이다. 부동산으로 최고의 불로소득으로 부의 독점과 소득의 양극화를 심화하는 현상에 적극적으로 정책대응을 해야 함은 너무도 자명하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 팽배하게 됐을까 싶다. 빌딩에 대한 공시지가 현실화 비율을 80%로 높여 주택보유자들과 형평성을 유지하도록 하면, 상당한 세수 재원이 확보되고, '빌딩 귀족'이라는 용어도 조금 사라지지 않을까.


정부는 재정건전성 강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현실에서는 조세 형평성을 위해 마땅히 조세를 강화하거나 재정운용을 혁신해야 할 면이 곳곳에 있음에도 개혁과 혁신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매년 3천억원 이상 이익을 내는 기업에만 해당하는 법인세의 최고구간세율을 4% 내려줘야 일자리 창출 등 경제 선순환이 된다는 낙수효과의 허구를 최우선으로 추종하고 있다. 자기 모순적인 정책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대응과 비용 상승으로 물가가 오르는 현상황에서 취약계층 지원, 기술 패권 경쟁에 따른 정부의 역할 확대 등을 고려하면 긴축재정기조로는 현 시대적 과제에 대응하기 어렵다. 오히려, 적극적 재정정책을 통해 경제 양극화를 극복해 나가는 국가적 과제 수행에 더 전념해야 한다. 고위 경제관료들의 마인드에 팽배한 재정 보수주의로는 현재 당면한 국가적 과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잘 유념해 시대적 과제인 양극화 극복이라는 구체적 비전제시를 통해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업적을 기록하기를 바란다. (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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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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