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부산 이전"…불똥 튈까 국책은행들 '촉각'(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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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시장 안전판 vs 시장 충돌'.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제기되는 논란이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경제위기 때는 '효용론'이 득세하다가도, 시장이 조금이라도 안정될 땐 '축소론'의 목소리가 커진다. 대체로 진보 정권에서는 정책금융의 역할을 키우려 하고, 보수 정권에서는 줄이려는 경향성을 보여왔다. 심지어 이명박 정권에서는 '민영화'를 추진했다. 정책금융 일부만을 새로 만든 공공기관인 정책금융공사에 이관하고, 나머지를 아예 통째로 민간에 넘기려고 했다. 하지만 같은 보수 정부였던 박근혜 정부는 4년 만에 민영화를 백지화하고, 정책금융공사를 폐지해 산은에 통합시켰다. 원래대로 다시 돌아간 셈이다.

이렇듯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산은을 중심으로 한 '정책금융기관 재정립 방안'은 반복된다. 정부 산하의 주요 공공기관의 쓰임새를 국정 철학에 맞춰 재조정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의 우선순위에 따라 역할 조정과 변경이 이뤄지는 것은 어찌 보면 바람직한 일이다. 이는 시장에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에 따라 시장 내 자원 배분도 달라진다.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정책의 방향을 알리는 시그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의 존립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벤트'가 5년마다 반복된다는 건 문제다.

산은은 엄청난 규모의 돈을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 작년 기준 산은의 자산 규모는 307조원(신탁 포함), 직원 수는 3천400명에 달한다. 지난해 시장에 공급한 자금만 83조원에 이른다. 정책금융기관의 맏형이라 불리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산은은 국내 최초 타이틀이 많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기법을 개발해 자금을 공급했고, 각종 대출자산을 기반으로 한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을 통해 부채자본시장의 영역도 개척했다. 민자발전 프로젝트에도 각종 금융기법을 동원해 자금을 지원하고, 사회간접자본(SOC) 시장에서도 다양한 금융지원에 나섰다. 외화 조달은 물론 거기서 연결되는 파생금융 시장 개척자 또한 산은이었다. 최종 수혜자는 우리 기업들이었다. 그에 맞춰 우리 산업도 고도화했다.

산은은 정책금융기관이라는 외피와 함께 금융사라는 실질을 가진 특수한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안정성과 신뢰성이 중요한 곳이다. 많은 기업이 시중은행을 놔두고 산은을 찾는 이유는 믿을 만 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신용등급에 준하는 정부 기관으로써 조달 금리가 낮다 보니 지원자금의 이자율도 낮다는 게 기업들엔 큰 메리트일 것이다. 다양한 금융기법을 동원해 솔루션을 제공해 주고, 국가 정책과 연관이 깊은 사업일 경우는 좀 더 좋은 조건으로 지원해 주는 것도 기업들이 산은을 찾는 이유다. 시중은행들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주요 기업들에 대한 자금지원을 꺼리는 것도 산은과 같은 정책금융기관으로 기업들이 발을 옮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간 금융사들이 저리의 자금으로 자신들의 고객들을 빼앗아 간다고 항변하지만, 결국 고객인 기업은 유리한 조건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참 요상한 일이 벌어졌다. 금융당국이 산은의 알짜 거래처를 시중은행에 넘기려는 계획을 세우다 딱 걸린 것이다. 우량·성숙 기업 여신을 시중은행으로 이관하는 프로세스를 만들라는 금융당국의 주문에 산은은 어느 기업을 넘길 수 있는지를 판별하는 기준과 시나리오를 만든 것이다. 산은을 관리·감독하는 금융위원회는 "그런 일 없다"며 딱 잡아떼고 있고, 강석훈 산은 회장은 "언론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했다. 금융당국과 산은이 만든 문건을 보면 황당하다. 전체 영업자산 243조7천억원 중 이관 대상이 되는 자산을 무려 106조원으로 추산했다. 이 중 신용등급 'AA-' 이상 최고 수준의 신용도를 가진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자산만 18조3천억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를 민간에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 수로는 226개로, LG화학과 SK하이닉스, 삼성물산 등 굵직한 국내 기업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얼토당토않은 계획을 추진했을까. 그것도 산은의 상당 규모 알짜 자산을 넘겨받을 곳을 2개 시중은행으로 한정하면서까지. 특혜 논란이 불 보듯 뻔하고, 산은의 정책금융 역할 축소는 물론 부실 가능성까지 발생할 수 있는데 말이다. 산은 내부에 따르면 '기획은 금융위였고, 실무 작업은 산은 특정부서'였다고 한다. 논란이 커지자 계획은 접었다는 것이지만 산은 내부 직원들은 이마저 믿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을 추진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 정부처럼 정책금융 역할 재조정 차원이라면 정책 방향과 업무의 변경 등이 뒤따르는 게 우선일 텐데 아예 자산을 통째로 특정 시중은행에 넘기겠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아이디어'다. 더 큰 문제는 산은에서 대출을 받은 기업들의 입장은 없다는 것이다. 거래은행이 바뀌는 일이고, 그에 따라 대출 조건 등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말이다. 본점의 부산 이전과 함께 최근 벌어지는 일들이 맞물려 산은 내부는 거의 쑥대밭 분위기라고 한다. 20년 넘게 산은을 다닌 한 직원의 말은 상징적이다. "요즘 분위기는 정말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역대급입니다."

(기업금융부장)
pisces738@yna.co.kr
※쿰파니스는 라틴어로 '함께(cum)'와 '빵(panis)'이 합쳐진 말로 동료나 친구를 뜻하는 컴패니언(Companion), 기업을 뜻하는 컴퍼니(Company)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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