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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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2008년 7월 7일. 주요 일간지 1면 하단 광고면에는 푸른 빛이 강렬한 바다 사진이 배치됐다. 바다 사진 위에 써 있는 문구는 'THE NEXT?'였다. '세계로 가는 또 하나의 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도 밑에 쓰여 있었다. 이 의미심장한 광고는 한화그룹의 '작품'이었다. 언뜻 보면 대기업 그룹이 통상적으로 하는 이미지 광고쯤으로 보였지만, 한화그룹의 타깃은 분명했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다.

당시 산업은행이 진행하던 대우조선 공개경쟁입찰에서 한화그룹은 현대중공업, 포스코 등 경쟁사보다 인수 의지가 훨씬 강했다. 전사적으로 조직을 꾸려 '인수 작전'을 벌였다. 대우조선 인수팀을 이끌던 당시 금춘수 그룹 경영기획실장은 포스코나 두산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려는 것은 계열사 납품 때문이라고 직격하기도 했다. 그만큼 공격적인 스탠스로 인수전에 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총수인 김승연 회장이 "대우조선을 반드시 가져오라"고 엄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기업 그룹 중 한화그룹만큼 인수·합병(M&A)에 이골이 난 곳도 없다. 부실기업이었던 다우케미컬, 한양화학, 정아그룹, 한양유통, 동양백화점, 대한생명 등을 사들여 그룹 내 주력 기업으로 키운 '원조 M&A 명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우케미컬과 한양화학은 한화그룹 석유화학 사업의 밑바탕이 됐고, 명성콘도로 유명했던 정아그룹은 한화리조트로 변신했다. 한양유통은 한화갤러리아로 바뀌었고, 대한생명은 국내 굴지의 생명보험사가 됐다. 1981년 29살의 젊은 나이에 그룹 총수에 오른 김승연 회장은 그래서 한화그룹 M&A 역사의 산증이었다. 지금 당장은 부실하더라도 가져와 키울 수 있는 사업이라면 귀신같이 알아챘다. M&A에 대한 '촉'이 남달랐다.

2008년 10월 한화그룹은 결국 대우조선의 새 주인으로 낙점됐다. 김승연 회장은 장충초등학교 동기동창인 현대중공업그룹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의 맞대결에서 보기 좋게 신승했다. 입찰가격을 6조원 넘게 써내는 강한 '베팅'이 주효했다. 그만큼 대우조선을 인수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당시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한화의 의지를 꺾는 걸림돌이 됐고, 결국 인수에 실패했다. 대우조선의 대주주였던 산은과는 이행보증금 반환 여부를 두고 소송까지 가야 하는 악연이 됐다.

14년의 세월이 흘러 산은은 한때의 '악연'이었던 한화그룹을 찾았다. 대우조선을 다시 인수할 의사가 있는지 문을 두드린 것이다. 한화그룹은 흔쾌히 산은과 다시 손을 잡았다. 결국 2008년 당시보다 가격이 3분의 1로 줄어든 2조원에 대우조선 경영권을 가져오게 됐다. 그 사이 한화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굉장한 변화를 겪었다. 대우조선을 인수해야 할 이유는 더 커졌다. 'K-방산'을 이끌면서 미국의 록히드마틴과 같은 글로벌 방산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도 세워둔 상태다. 14년 전보다 훨씬 싼 가격에 경영권을 가져올 수 있게 된 것은 덤이다.

한화그룹이 대우조선 인수 이후 어떤 경영성과를 낼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세계적인 에너지 대란에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선박을 싹쓸이 수주를 하고 있지만, 대우조선의 부실은 여전하다. 대우조선의 올해 상반기 기준 부채비율은 무려 713%에 달한다. 수주 산업 특성상 부채비율이 높은 측면도 있지만,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부실은 잠재된 상태다. 2008년 인수 당시 부채비율이 368%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상황이 더 나빠진 셈이다. 국책은행에 갚아야 할 빚도 수조원이다.

한화그룹의 인수자금 2조원은 대주주인 산은으로 가지 않는다. 온전히 대우조선의 자본으로 들어가고 운영자금으로 쓰이게 된다. 한화그룹의 '뉴 머니'가 투입되면 대우조선은 숨통이 트일 것이다. 하지만 경영정상화까지는 많은 시일이 걸릴 것이다. 새로운 자금을 또 투입해야 할 수도 있다. 경영효율화를 위해 사업 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모든 게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인수 이후에도 여전히 28.2%의 지분을 보유한 산은이 지원할 것이라고 공언하지만, 이른 시일 내에 남은 지분마저 팔고 완전히 떠날 것이다. 부실기업을 알짜 기업으로 변신시키는 '신공'을 보여줬던 김승연 회장의 '매직'이 다시 한번 나타날지 관심이다.

(기업금융부장)
pisces738@yna.co.kr

※쿰파니스는 라틴어로 '함께(cum)'와 '빵(panis)'이 합쳐진 말로 동료나 친구를 뜻하는 컴패니언(Companion), 기업을 뜻하는 컴퍼니(Company)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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