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피혜림 기자 = 흥국생명이 외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상환하지 않은 것을 두고 시장에선 당국을 향한 볼멘 소리가 나온다.

보험업법 감독규정 상 콜옵션 상환 여부에 대한 사전 교감이 있었을텐데, 흥국생명의 신인도 하락이 국내 금융기관 전반에 미칠 영향을 고려했다면 어떻게든 상환을 독려했어야 했던 게 아니냐는 논리다.

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이달 9일로 예정된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당초 흥국생명은 외화와 원화 자본증권을 모두 발행해 해당 물량을 차환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시장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아시아와 유럽 시장에서 차환용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위한 북빌딩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급속히 악화한 금리 시장 탓에 계획을 연기했다.

업계에선 흥국생명의 현금 상환 가능성도 열어놓고 이들의 재원 마련 과정을 지켜봤다. 대주주의 지원이나 채권 매도를 통해 재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흥국생명 재무 건전성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태광산업[003240] 이라는 대주주가 명확한 곳"이라며 "차환 발행이 안 되면 현금 상환도 있다. 다만 일시적인 유동성 유출이 RBC에 부담이 될 수 있어 당국의 허들을 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보험업 감독규정에 따르면 보험사가 신종자본증권을 중도 상환하려는 경우에는 감독원장의 승인이 필요하다. 신종자본증권의 세부 요건, 조기상환 요건 모두 금감원장의 결정 사항이다. 신종자본증권 발행으로 자금을 차입하려면 재무 건전성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경우만 해당한다. 신종자본증권 발행과 차환 전 과정에서 금감원과 협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흥국생명은 이번 콜옵션 행사를 논의하고자 금감원을 찾았다. 금감원 역시 흥국생명의 자본 건전성 이슈를 알고 있었던만큼 금융위원회와 논의해 콜옵션 상환을 적극 지원하려고 했다.

하지만 흥국생명이 상환을 포기하면서 금감원의 역할이 사라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우리은행 사례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상환 승인을 하려고 했다. 미이행시 외화 차입 여건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흥국생명이 발행 수요 부족으로 할 수 없다고 결정하면서 승인 자체가 필요없는 상황이됐다. 보험업법 규정의 문제가 아닌 외화 시장 쪽 이슈가 돼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금융기관들은 발행 시장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금리 수준이 너무 높은데다, 높은 금리에도 그만큼 수요가 따르지 않아서다. 말 그대로 유동성 경색이 극에 달했다.

보험사는 더 어려웠다. 시장 금리가 오르며 채권 평가손실이 늘어난 탓에 RBC 비율은 재차 하락했다. 이를 끌어올리고자 발행시장을 두드렸지만, A 등급의 보험사조차 수요를 채우기 버거웠다.

흥국생명의 6월 말 기준 RBC는 157.8%였다. 3분기 시장 금리를 고려하면 최근에는 당국의 권고치(150%)를 하회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 보험사 임원은 "어떤 식으로든 상환에 나섰다면 자본 비율에 영향을 줘 RBC가 더 떨어졌을 것"이라며 "미상환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홍콩 시장을 중심으로 투매가 나타나며 흥국생명 채권 가격이 바로 떨어졌다. 흥국생명 입장에선 일시적인 유예 조치를 기대했을 법하지만 특정 회사만 이를 봐주기는 당국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금융당국이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보험사를 바라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최근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유동성 규제를 완화하고자 자산의 인정 범위를 활성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만기 3개월 이상 남은 채권 등 즉시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까지로 확대했다.

하지만 최근 채권을 매각해 유동성 확보에 나섰던 보험사들엔 이번 조치가 오히려 경고성 메시지로 읽히기도 했다. 유동성 자산 범위를 넓혔으니, 유동성 확보를 위해 채권을 매각해 시장 변동성을 확대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또 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채권 매각도 어렵고 발행도 힘든 상황에서 흥국생명이 유동성 확보에 실패한 것"이라며 "RBC 때문에라도 콜옵션을 포기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업계에선 내년부터 사라질 RBC 규제에 금융당국이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부터 RBC를 대체해 도입될 신(新) 지급여력기준(K-ICS·킥스) 감독 체제 아래에서는 대다수 보험사의 건전성이 지금보다 나아지기 때문이다.

흥국생명 콜옵션 미상환이 금융 시장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했다면, RBC보단 거시적인 관점에서 금융당국이 일찌감치 상환을 독려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MG손보, 흥국생명 모두 한시적인 유예 조치가 있었다면 시장에 미칠 파장이 적었을 것"이라며 "흥국생명처럼 대주주가 있는 곳의 자구안이 부족했다는 점을 차지하더라도 킥스로 대체될 RBC 규제가 업계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발행 시장에서 보험사가 겪어야 할 어려움을 생각하면 흥국생명은 조기 상환에 나섰어야 했다"고 귀띔했다.

 

 


jsjeong@yna.co.kr
phl@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2시간 더 빠른 08시 10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