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비상경제장관회의 주재
(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2.11.4 kimsdoo@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금융(Financing)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한 과정인 듯싶지만 믿음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하지만, 그 믿음이라는 것은 자금거래를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실제 돈이 오가기 위해서는 이자를 얼마로 할 것이며, 언제까지 갚을 것인지, 정해진 기간 이전에 갚는다면 어떤 이득이 있고, 혹시 못 갚을 경우는 어떤 제재가 따를 것인지 등을 세세하게 정하게 된다. 다시 말해 금융은 믿음을 전제로 한 계약관계다.

너무나 잘 알려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은 극단적이지만, 금융과 계약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돈을 갚지 못하면 심장에서 가까운 살 1파운드를 떼어가겠다'는 말을 굳이 따져본다면 금전대차 계약의 특약 조건 정도로 볼 수도 있다. 돈을 빌린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결국 돈을 갚지 못했고 법정 분쟁으로 치닫는다. 판사는 돈을 못 갚은 안토니오의 살을 떼어가도 좋다고 판결한다. 다만, 피를 단 한 방울도 흘려선 안 된다는 조건을 단다.

사실 소설이니 가능하지, 지금과 같이 금융과 법이 고도화한 시대에서는 현실적이지 않은 얘기들이다. 샤일록과 안토니오가 맺은 계약 속의 '살을 떼어간다'는 조건에는 피를 흘린다는 전제가 깔려 있을 수도 있다. 어찌 보면 판사는 이를 간과했을 수도 있다. 굳이 이런 말을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금융 계약은 그 자체로도 복잡하고, 계약 관계가 파기됐을 때 예기치 못한 파장으로 확산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금융이 더 복잡해진 세상에서는.
금융시장이 혼란스럽다. 전 세계적인 긴축으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는 와중에 대한민국은 신용 붕괴에 대한 공포까지 겹치고 있다. 그 후행적 결과로 금리는 치솟고 돈줄은 막히고 있다. 왜 이런 공포가 만들어졌을까. 결국은 금융 계약의 파기에서 비롯된 후과다. '2천50억짜리 레고랜드' 금융 계약이 깨지면서 초래한 결과는 끔찍하다. 지방자치단체와 금융사가 맺은 금융 계약의 파기는 애꿎게도 전체 금융사의 생존을 위협하고, 기업들의 숨구멍을 조이고 있다. 계약의 전제가 된 믿음이 깨진 결과다. 살을 도려내야 하는데 피를 흐르지 않게 할 방도는 많지 않다.

채권과 같은 금융상품의 가격을 매기는 시작은 신용도 평가에서 시작된다. 최고 등급인 'AAA'부터 파산에 해당하는 'D'등급까지의 신용도는 다양한 사업적·재무적 변수 등을 통해 결정되는데 궁극적으로는 부도 가능성의 비율이 기초가 된다. 채무를 갚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정도 차이로 결정되는 신용등급은 그래서 금융시장의 근간이 되고, 금융 계약의 밑바탕이다. 그런데 최근 금융시장은 이마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유동성 위험이 서서히 신용 위험으로 전이되는 전조다.

신용 시장이 붕괴할 때 나타나는 가장 큰 위협 요인은 금융을 넘어 실물경제에서의 부도 가능성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일부 건설사와 저신용 기업들을 중심으로 그런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금융시장 경색이 심화할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고통 분담'이라는 고상한 말을 앞세워 구조조정이라는 끔찍한 상황이 실제화한다. 실물의 붕괴는 결국 다시 금융으로 전이되고, 가장 최상위 유동성 공급자인 은행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어봤다. 그런데 또 똑같은 경험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정부는 50조원+@, 금융지주사들은 95조원의 대규모 자금을 공급해 급한 불을 끄려고 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부족하다고 아우성친다. 도대체 얼마를 더 풀어야 이 상황이 극복될 것인지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고대하던 미국의 피벗(정책 전환)은 엇나갔다.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예견하는 강한 긴축 신호만 나왔다. 기획재정부와 금융당국 실무자들이 하루하루의 자금시장 동향을 열심히 체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시장을 또 흔들어 댈 수 있는 미세한 트리거들은 숱하게 쌓여있다. 그래서 적어도 한숨 돌렸다고 할 때까지는 정책·금융당국 수장들이 매주 만나 점검 회의를 해야 한다. 시장 상황에 대한 정제된 메시지와 대책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도 꾸준히 시장에 알려줘야 한다. 지금처럼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금융정책이 엇갈리는 상황 속에서는 더더욱 필요하다. 시장에서 이젠 됐다 싶을때까지.


(정책금융부장)
pisces738@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3시 17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