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월가는 올해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노심초사했다. 역대 월드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우승한 해엔 경제위기가 발생했다는 속설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필라델피아가 우승한 1929년엔 세계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대공황이 있었고, 1980년엔 폴 볼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과격한 금리 인상과 맞물려 심각한 경기침체가 나타났다. 100년 역사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2008년에도 월드시리즈 우승팀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였다.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지만, 올해 미국 경제 상황과 연관 지어 이 속설이 그럴싸하게 먹혔다고 한다.

미국 경제는 올해 10%대에 육박하는 과격한 인플레이션과 이에 따른 연준의 자이언트스텝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고 있었기 때문에 월가는 바짝 긴장한 채 경기를 지켜봤다. 월가의 바람(?)대로 필라델피아가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면서 미신에 불과한 이 징크스는 시장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때마침 미국 금융시장에도 온기가 돌고 있다.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7.7%로 예상보다 낮게 나오면서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 조절에 대한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다우와 나스닥 등 주요 주가지수가 급등하면서 증시바닥론이 힘을 얻고, 세계 경제를 주름지게 했던 킹달러 현상도 완화되는 모습이다. 기나긴 인플레 터널에서 드디어 빠져나올지 기대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중간선거 이슈도 시장에 큰 변동성을 주진 않았다.
중국에서도 희소식이 들려 온다. 고강도 방역을 지속했던 중국은 지난주 해외 입국자의 시설 격리 기간을 2일 단축해 총 격리 일수를 종전 10일에서 8일로 줄인다고 밝혔다. 중국의 이런 행보는 리오프닝에 대한 기대를 키우며 금융시장 전반에 호재로 작용했다. 위안화가 강세를 보이며 원화 상승에 힘을 보태는 형국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올해 시장을 짓눌렀던 모든 공포는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채 10년물 금리(파란선)와 나스닥지수의 추이(붉은선)
연합인포맥스 차트



그러나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공포는 줄었으나, 위험 요소들이 완전히 제거되진 않았다. D(디플레이션)의 공포, R(경기침체)의 공포, 감원과 구조조정 등 무시무시한 키워드들이 내년까지 시장을 짓누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빅테크를 중심으로 미국 기업들은 대규모 인력 해고에 나서며 몸집을 줄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대기업들은 불요불급한 투자는 미루고, 비용 절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심리적으로는 이미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내년 6월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멈추고 난 뒤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스럽다. 미국의 고금리 체제가 지속되다 보면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특히 미국은 10년 넘게 초저금리 체제를 유지했는데 그 이면에 어떤 위험이 내재해 있는지 파악이 되지 않은 상태다. 더욱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창궐 이후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통화량이 급격히 늘어났는데 이 돈이 어느 위험자산으로 스며들어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 파생상품들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따져보기 힘들다.


비트코인의 14일 일중 차트




지난주 발생한 이른바 '코인판 리먼 사태'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대규모 인출 사태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가상화폐 거래소 FTX는 대규모 인출 사태를 겪다 결국 11일(현지시간)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가상화폐 업계 사상 최대규모의 파산으로 기록될 FTX의 부채규모는 66조원에 달한다. FTX에는 캐나다 교사 연금은 물론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일본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 미국 헤지펀드 등의 자금이 투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위험요소다.

2008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금융위기도 따지고 보면 9.11 테러 이후 시작된 저금리 체제 아래 누적된 폐해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번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고금리 환경에서 신흥국들의 경제 체력이 얼마나 버틸지도 의문이다.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처에 기다리고 있다. 아직 축포를 터뜨릴 때는 아니다. (편집해설위원실장)

비트코인의 일간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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