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펀드 5조 더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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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총재,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 참석
(서울=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2.11.28 [한국은행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은행의 도산, 예금인출사태 등으로 금융시장에 위기가 발생해 경제 전체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경우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해 위기 상황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기관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화폐 발행 권한을 보유한 중앙은행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밝힌 '최종대부자'의 정의다. 발권력과 지급준비금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통해 은행의 은행 역할을 하는 중앙은행은 최종대부자로서 경제의 '혈관'이 막히지 않도록 하는 힘을 갖는다. 실제 여러 위기 과정에서 한은은 유동성이 부족한 금융기관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해 위기가 크게 번지지 않도록 하는 차단막이 돼 왔다. 금융시장이 고도화하고 실물경제의 규모가 커져 위기의 크기 또한 확대되면서 최종대부자인 중앙은행을 향한 '금융안정' 역할에 대한 기대는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두 달 가까이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는 금융시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린 도화선이 됐다. 가파른 통화 긴축 과정에서 살얼음판을 걸으며 조심조심 대응해 온 금융시장 참가자들을 패닉으로 몰아버린 주범이었다. 가뜩이나 울고 싶어도 꾹 억누르며 참고 있던 사람들에게 세게 뺨을 때린 격이다. 그동안 잠재돼 있어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던 '트리거'들은 두더지 게임처럼 툭툭 튀어나오고 있다. 한 번에 여러 개의 두더지를 잡을 수 있는 준비된 요술 방망이만 있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방망이를 새로 만들면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누가 최종대부자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딜레마 때문이다. 그 역할을 해야 할 한은은 제롬 파월의 '몽니'에 방망이를 잡을까 말까를 수도 없이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최종대부자이지만 최종대부자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기막힌 처지가 됐다.




정부는 위기를 방치할 수 없다. 뭐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역시 쓸 가용수단은 많지 않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지만 정부는 그 돈이 없다. 그럼에도 돈 문제로 생긴 위기는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그 역할을 해야 하는가. 결국 불려 나온 게 시중은행과 은행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책금융기관이다. 그런데 이들은 한은처럼 발권력이 없다. 50조+알파(α) 대책, 95조원 추가 유동성 공급, 8조5천억원의 추가 대출 여력 확보. 한 달 넘게 정부가 내놓은 시장 안정화 대책들이다. 이 대책들의 주인공은 시중은행과 정책금융기관이다. 그나마 시장 안정을 위해 나설 수 있는 대안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적잖은 안정 효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땅을 판다고 돈은 나오지 않는다. 자금이 소진되기 전에 시장이 정상으로 돌아온다면 좋겠지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새로운 두더지는 또 튀어나온다.

문제는 비정상적 금융시장에서 돈을 조달해서 돈을 공급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은행이 자금을 확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채권을 찍던지, 예금을 받던지. 그런데 채권을 찍지 말라고 한다. 금리를 올려야 예금도 더 들어올 텐데 금리도 올리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적기에 신속히 충분한 자금을 공급해 달라고 한다. 이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최종대부자인 한은에 채권을 맡기면 돈을 빌려줄 수 있고, 예대율 규제를 조금 풀어줄 테니 여력은 생기지 않느냐고 한다. 물론 없는 것보단 낫다. 그런데 해법은 아니다. 정부와 당국이 왜 그런 요청을 하는지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구축효과와 역(逆) 머니무브와 같은 고상한 단어들을 동원하지만 결국은 시장이 아직도 정상적이지 않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은행들은 최종대부자의 '한시적 역할'은 하지만,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정책금융기관이라고 다를까. 대표적인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도 곤란하기는 마찬가지다.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은 물론 부동산 연계 유동화증권까지 쉼 없이 사들여야 하는 처지다. 산은이라고 돈이 있을까. 산금채를 찍어야만 정부가 요구하는 대책을 실행할 텐데, 채권 발행을 자제하라고 한다. '어쩌다' 대주주(지분율 32.9%)가 돼 '자회사'로 두게 된 한국전력 때문에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전의 손실이 1조원 발생할 때마다 산은의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은 6bp 하락한다. 배당은 고사하고 건전성 우려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한전의 손실을 만회하려면 전기요금 인상과 자본확충이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지만, 현실화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대주주 산은이 한전에 자본을 넣어줄 여력도 안 된다. 제 코가 석 자다.

이런 와중에 채권시장 블랙홀 한전은 한전채를 계속 찍고 있다. 시장의 원성이 자자해지니 은행들에 대출을 해 주라고 요구한다. 올해 말까지 약 2조원 가량을 시중은행들이 한전에 대출해 줄 예정이다. 그만큼 시장에 나오는 한전채가 줄어들게 되니 시장 안정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근원적인 대책은 아니다. 시중은행들이 대주주 산은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는 꼴이다. 폭탄 돌리기에 다름없다. 현재 상황이 그만큼 녹록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내년 초 이후에도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아찔하다. 땅속에 돈이 가득 묻혀 있다면 모를까.
(정책금융부장)
pisces73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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