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금융기관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는지, 대출을 어디다 하는지 과거에는 정부가 관여했습니다. 그게 관치금융입니다. 금융기관의 거버넌스(지배구조)가 아주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일입니다. 그것을 관치금융이라 말하면 안 됩니다".
지난 21일 열린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마무리 발언 중의 일부다. 영업 개입은 관치이고, 지배구조 개선은 관치가 아니라는 구분법이다. 그런데 금융기관의 거버넌스는 곧 인사다. 대통령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물론 최근 논란이 되는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인사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다. 전체 발언을 보면 맥락상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발언을 읽는 금융권 당사자들은 그 말이 무엇인지 안다. 대통령의 말은 그 자체로 엄청난 무게를 갖기 때문이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2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12.21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kane@yna.co.kr

올겨울 금융권 CEO 인사를 두고 관치금융 논란이 뜨겁다. 금융권 '저승사자'로 불리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에 이어 김주현 금융위원장까지 논란의 한복판에 올라탔다. 거기에 대통령까지. 사실 관치금융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이 논란의 역사는 참 깊고 오래됐다. 대통령의 말처럼 관치금융은 돈의 가격과 배분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면서 시작됐다. 박정희 정부의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이 시초다. 금융기관, 특히 은행을 정부가 직접 통제했다. 어느 기업에, 얼마를, 어느 정도의 금리로 대출해 줄 것을 정부가 직접 관여했고, 모든 영업상황도 현미경처럼 들여다봤다. 당시 재무부가 은행장 역할을 하던 시절이다. '사실상 대주주'가 정부이다 보니 맘에 들지 않는 '현실의 은행장'은 언제든지 파리 목숨이었다. 인사 개입이라고 할 것까지 없고 그냥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산업화 시대였고 군사정부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던 시절이었으니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다.

'사실상 은행장' 역할을 하던 재무부 고위 관료들은 퇴직 후 국책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다. 은행장과 같은 급이 아니라는 이유로 '총재'라는 고상한 직급까지 만들어 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정부가 5년마다 바뀔 때마다 관치금융과 고위 관료의 낙하산 인사는 늘 논란이 됐다. 재미있는 것은 관치금융을 청산하는 특별법까지 만들자는 요구가 정치권에서 나오기도 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3월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총선공약으로 '관치금융 청산특별법 제정'을 앞세웠다. 금융기관 경영진의 낙하산 인사를 금지하고, 금융기관 자산운용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돈 문제, 인사 문제를 정부가 개입하지 말라는 요구였다. 물론 여야의 논란 끝에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초특급 낙하산이 금융기관에 줄줄이 내려갔다. 낙하산이 소위 모피아에서 정치권과 인연이 깊은 민간인으로 바뀐 것은 특이점이었다. 고려대 출신 금융인들이 모인 고금회의 인사들은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지주 회장을 장악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서강대 출신 금융인들(서금회)이 도약했다. 어떻게 낙점됐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관치금융 청산특별법을 만들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윤 대통령의 말처럼 정부가 금융기관의 영업에 개입하는 방식의 관치는 많이 사라졌다. 다만, 금융시장이 위기 상황에 빠졌을 때는 여전히 논란은 발생한다. 기업 구조조정이라든지, 시장 안정화를 위한 다양한 유동성 공급 옵션들이 마련될 때는 정부와 금융기관은 충돌한다. 물론 항상 정부가 승리한다. 2003년 카드 사태 당시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국장이던 김석동의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은 관치금융 논란 때마다 늘 회자한다. 금융기관은 치(治)의 대상일 뿐이다. 그래도 금융산업의 덩치가 커지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거 주주로 들어오면서 정부의 '대놓고 관치'는 많이 사라졌다. 특히 가격에 영향을 주는 식의 개입에 대해 정부 관료들도 목을 내놓지 않고서는 하지 못 할 일로 생각할 정도는 됐다.

그런데 논란이 되는 것은 인사다. 정부는 금융기관, 특히 민간 금융사의 인사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절대로 개입할 의사도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금융인은 없다. 예전처럼 찍어서 내리꽂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금융기관별로 CEO를 선임하는 절차가 이전보다는 복잡해졌다. 추천 절차를 여러 단계로 해놔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검증도 받아야 한다. 추천위원회에 포함된 사외이사들의 역할과 파워가 커진 셈이다. 그렇더라도 사외이사들이 신의 영역에 있지는 않다. 합리적 결정을 할 것이라고 기대만 할 뿐 실제 합리적인 일들이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인사철 금융당국 수장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이를 두고 혹자는 관치금융의 새로운 수법이라고 하고, 정부 당국자들은 그 정도도 말 못 하냐고 항변한다. 윤 대통령의 말처럼 정부는 금융기관의 거버넌스를 투명하게 할 의무가 있다면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관치금융 논란에 '내치(內治)'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냈다. "관치는 분명히 문제가 있고 나쁘다는 건 알겠지만 반대로 내치로 가는 것은 맞는 방향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내치는 주인 없는 은행에서 주요주주와 우호적인 세력을 기반으로 주인처럼 행세하는 것을 빗댄 것이다. 속된 말로 세력 만들어서 투명하지도 않게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것을 당국이 가만히 놔둬서야 하겠느냐는 얘기다. 주인도 아닌 사람이 임기 3년짜리 금융지주 회장을 연임에 연임을 해서 6년, 9년씩이나 하는 게 정상적이냐는 비판이기도 하다. 동의가 되는 것도 있고 동의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금융기관 CEO 선임 절차와 시스템이 과거보다 잘 돼 있기는 하지만, 과연 투명하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인 게 사실이다. 시스템이 오히려 '장기 집권'을 위한 발판이 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경영 능력만 있다면 6년, 9년을 넘어 12년을 한들 뭐가 문제인가. 외부에서 영입된 전문경영인이 엄청난 성과를 내 18년 동안 CEO를 한 국내 기업도 있다. 기왕에 관치금융 논란이 벌어졌으니 한 번 더 세게 논쟁을 펼쳐봤으면 한다. 단순히 정치적 산물이라고 퉁치고 넘어갈 게 아니라 김 위원장의 말처럼 뭔가 '중간의 접점'을 찾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좋은 관치, 나쁜 관치, 좋은 내치, 나쁜 내치는 무엇일지. 똑같은 논란이 매번 반복되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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