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국내 대표적인 모험자본 운용기관으로 꼽히는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한국성장금융)이 정작 자체 성장판은 닫히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핵심 사업 중 하나인 기업구조개혁 업무가 올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로 이관되는 데 이어 한국성장금융의 전신이자 근간인 성장사다리펀드도 올해 8월 투자 기간이 끝나 회수 기간으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지난해 전 정권의 낙하산 인사 논란을 겪은 이후 주요 인력이 잇달아 빠져나가는 가운데 약정액마저 줄어들게 되면서 한국성장금융은 당분간 활로를 모색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캠코는 한국성장금융이 맡고 있던 기업구조혁신펀드의 신규 조성 및 운용 업무를 넘겨받기 위해 준비에 한창이다. 금융위원회가 해당 업무를 한국성장금융에서 캠코에 이관하기로 작년 말 결정한 데 따른 후속 작업이다. 한국성장금융은 지난 2018년부터 약 5천억원씩 세 차례에 걸쳐 총 1조4천900억원 규모의 기업구조혁신펀드를 조성해 운용하고 있다.

현재로선 캠코는 4차 펀드부터 업무를 전담하게 된다. 기존 1~3차 펀드까지 캠코로 이관될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기존 펀드를 합한 기업구조조정 관련 업무는 모두 캠코로 이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한국성장금융은 기존 기업구조혁신 펀드는 여전히 전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성장금융 관계자는 "기존 1~3차 펀드는 앞으로도 우리가 운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존 펀드까지 캠코로 이관되는지에 대해선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만약 한국성장금융이 1~3차 기업구조혁신 펀드를 캠코로 이관하게 될 경우 약정액은 크게 줄어든다. 현재 한국성장금융의 총 약정 규모는 7조2천억원인데 기업구조혁신펀드가 캠코로 모두 이관되면 약정액이 20%가량 감소한다.

기업구조혁신펀드는 산업은행이나 캠코 같은 국책기관이 아닌 민간 자본시장이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하도록 한다는 취지로 2017년 말 형성됐다. 한국성장금융이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나 민간은행 등으로부터 출자받아 모펀드를 조성한 뒤 민간 자산운용사가 조성한 자펀드에 출자하는 방식이다.

설립 당시에도 캠코가 기업구조조정 펀드는 자신들이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서종군 당시 한국성장금융 투자운용본부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정부에 민간 주도의 당위성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만큼 한국성장금융으로선 기업구조혁신펀드가 업무 영역을 넓힌 주요 사업인데 이번 조치로 영향력 감소는 불가피해진 것이다.

한국성장금융의 또 다른 핵심축인 성장사다리펀드가 올해 8월 만기를 맞는 것도 부담 요인이다.

2013년 8월 조성된 성장사다리펀드가 외연을 넓히면서 설립된 기관이 한국성장금융일 정도로 이 펀드는 핵심 근간이다. 1조8천500억원 규모로 조성된 성장사라디펀드는 산업은행, 기업은행,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출자 약정을 하면서 운용 기간이 20년으로 설정됐다. 투자 기간이 10년, 회수 기간이 10년인데 투자 기간이 오는 8월 끝나게 된다.

성장사다리펀드는 지난 10년간 국내 벤처 생태계가 성장하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는 업계 안팎에서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런 만큼 한국성장금융이 성장사다리펀드의 운영 계획을 변경해 출자사업을 이어가든지, 아니면 비슷한 성격의 다른 펀드를 조성해서 벤처 업계의 버팀목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이런 좋은 평판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진 한국성장금융이 성장사다리펀드를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성장사다리펀드가 출자사업을 멈추고 투자금을 회수하는 역할만 맡게 된다면 한국성장금융의 영향력 또한 자연스럽게 감소할 수밖에 없다.

성장금융 업계 관계자는 "현 정권 들어 한국성장금융에 대한 정부의 주목도가 낮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조직을 재정비하고 활로를 모색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성장금융은 지난해부터 잇달아 핵심 인력이 이탈하면서 가뜩이나 어수선한 분위기다. 여기에 핵심 사업 분야마저 만기를 맞거나 다른 기관에 넘겨주게 되면서 조직에 활력이 떨어진 상태가 됐다. 지난해에는 한국성장금융의 핵심 부서인 투자운용1본부를 이끌던 황인정 본부장이 퇴사했고 중간 간부 및 운용역들도 잇달아 민간 벤처캐피털로 자리를 옮긴 바 있다.

작년 9월 한국성장금융 대표로 부임한 허성무 전 과학기술인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CIO)도 이런 난맥상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부임 전후로 핵심 인력이 이탈하고 핵심 사업마저 축소되거나 이관을 앞두고 있지만, 별달리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여의도 한국성장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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