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재헌 기자 = 우리나라 국채가 세계국채지수(WGBI) 워치리스트(Watch List·관찰대상국)에 등재된 지 130여 일이 지났다. 이제 정식 편입이라는 낭보까지 40여 일이 더 필요할지, 올해 추석을 넘길지 이목이 쏠린다.

WGBI 정식 편입이 목적지라고 한다면 가는 길은 마라톤보다 비행(飛行)에 가깝다. 관련 국가에 현재 상태와 이유, 스케줄, 착륙 여부 등을 모두 승인받아야 하는 것부터가 닮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상황과 지정학적 변수에 따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점도 마찬가지다. 주요국과의 관계가 상당히 중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WGBI를 담당하는 실무진인 기획재정부 국채과 부서원들도 출장을 위해 상당히 많이 비행기에 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가 완화하면서 범위가 대폭 넓어졌다.

최근 추경호 부총리가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WEF·다보스포럼)에서 한국경제 설명회(IR)를 주재하고 국제예탁결제기구(ICSD) 중 하나인 유로클리어 그룹 최고경영자(CEO)와 양자 면담하는 일정에 국채과장이 동행했다. 최상대 2차관이 영국에서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 러셀(FTSE Russell)을 방문하고 주요 투자은행(IB)들에 국고채를 홍보하는 자리에는 국채과 실무진 다수가 함께했다.

이외에는 사실 국채과장과 사무관 한두 명이 가방을 메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다반사다. 작년 9월에는 싱가포르로 날아가 개별 단위 면담을 온종일 진행했다. 글로벌 채권 매니저들에게 거시경제, 재정, 규제 등 다양한 부문에서 시시콜콜한 것까지 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국적 위원회에서 최종 편입을 결정하는 WGBI 특성상 누구에게도 소홀할 수가 없어서다.

글로벌 IB들의 또 다른 아시아 주요 거점인 홍콩으로 급하게 날아가기도 했다. 당시 홍콩의 방역 조치는 입국자들의 호텔 격리 의무 정도가 없어졌을 때다. 현장에서 국채 관련 업무에 매진했지만, 생활은 고군분투(孤軍奮鬪) 그 자체였다. 식당 출입이 안 돼 길 위에서 컵라면이나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IB들을 순회한 까닭이다. 외국인 비과세 조치와 맞물려 시기적으로 촉박했다.

수시로 진행되는 온라인 설명회에 비과세, 유로클리어 통합계좌 등을 위한 작업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국세청 등 유관기관을 포함해 IB들의 백오피스까지 발로 뛰어야 한다. 늦어진 국회 통과를 탓할 겨를도 없다.

지위고하보다 실리를 우선으로 여겼다. 유형철 국고국장도 개인투자용 국채법 등으로 국회를 수시로 오가는 틈을 쪼개 일본을 다녀왔다. 터놓고 대화하기 어려운 특유의 문화를 깨고 설명·설득하는 이중고를 겪었다.

컵라면까지 동원된 우리나라의 WGBI 가입 노력은 다행히 현재까지 좋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유로클리어 CEO는 장보현 국채과장의 이름을 외우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FTSE Russell이나 주요 투자자들이 우리나라의 준비에 대해 최고 수준(highest level)이라고 언급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서울채권시장에서 경험이 많은 시장참가자일수록 정부의 WGBI 가입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환율과 금리가 오르니 잠시 보여주는 것이겠지 하는 인식이다. 몇십 년 묵은 과제를 새 정부가 열심히 하겠냐는 시선도 존재했다. 실무진 협의 착수 약 3개월 만에 이뤄낸 워치리스트 등재는 이러한 편견을 단번에 깨버렸다.

추경호 부총리는 WGBI 워치리스트 등재 전에 FTSE Russell에 직접 서한을 보낼 만큼 진심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 10일에 WGBI 3월 편입의 어려움을 시사했다. 기술적·물리적으로 촉박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자칫 실망스러운 소식에 채권시장이 흔들릴 수 있었지만, 추 부총리는 투명한 정보 공개로 시장에 신뢰를 더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당일 채권시장은 부정적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같은 날 발표된 과장급 인사를 통해 국채과장은 조성중 전 거시정책과장이 선임됐다. 이제는 조 과장이 서울채권시장 선진화의 바통을 이어받을 예정이다.

jh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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