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결권 전적 위임에 이해충돌 우려…공시 소홀도 문제
 

(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최근 국민연금의 공격적인 수탁자책임활동(스튜어드십 코드)을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또 다른 주요 연기금인 우정사업본부는 상대적으로 미지근해 대조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우정본부도 2년여의 검토 끝에 지난 2021년 1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으나 찬성 의결권의 행사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데다 행사 대상 기업도 10여 곳에 그칠뿐더러 활동 내역도 제대로 공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우체국금융(우체국예금보험)의 수탁자책임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우정본부는 지난해 상반기 총 15회의 주주총회에서 118건의 상정안건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찬성 비율이 93.6%로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반대는 5.8%에 불과했다. 중립 또는 기권의 비율은 0.6%였다.

이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수탁자활동과 확연히 대비되는 수치다.

작년 9월 공개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현황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7개월간 기금본부는 직접 또는 위임 형태로 총 745회의 주총에 참석해 3천297건의 상정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했다. 작년 7월엔 주총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작년 상반기 수치다. 이 가운데 찬성 비율은 75.86%, 반대 비율은 23.87%에 달했다. 참석한 주총 수와 의결권을 행사한 안건 수, 반대 비율까지 우정본부와 뚜렷하게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물론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투자 규모가 월등히 큰 만큼 수치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작년 상반기 말 기준 국민연금기금의 국내주식 투자액은 132조원에 이른 반면 우체국예금과 우체국보험은 도합 약 8조원에 그친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투자액이 우정본부의 16.5배에 달한다.

하지만 우정본부의 수탁자활동은 이 같은 비율 이상으로 소극적이다. 작년 상반기 참여한 주총 건수는 국민연금이 우정본부의 약 50배에 이르렀다. 우정본부가 국내주식 투자액 대비 수탁자활동엔 적극적이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의결권을 행사한 비율도 우정본부는 국민연금의 약 28분의 1에 불과했다. 게다가 주주 안건에 반대한 건수도 우정본부는 작년 상반기 통틀어 6건에 그쳤다. 국민연금의 787건과 비교하기 힘든 수치다.

연기금 관계자는 "주총 안건에 대한 반대 비율이 낮다고 무조건 수탁자활동을 소홀히 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국민연금 등의 수탁자활동 추이와 비교해봤을 때 찬성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측면이 있고 다소 미온적이거나 소극적이라고 볼 여지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정본부의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이 낮은 데는 수탁자활동을 모두 위탁운용사에 위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정본부는 작년 1월부터 국내주식 위탁운용사에 주주활동 및 의결권 행사를 위임하고 있다. 국내 상장주식 중 우체국금융의 보유 지분이 3% 이상이거나 투자하고 있는 주식 자산에서 비중이 1% 이상인 기업이 의결권 행사 대상이다.

연기금 관계자는 "위탁운용사는 특정 기업에 의결권을 행사할 때 영업상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며 "대표적으로 퇴직연금 사업만 해도 계약을 맺고 있는 상장사와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데다 모든 상장사가 잠재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점, 나아가 다른 금융 계열사의 영업 문제 등을 따져보면 주총 안건에 반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이같은 문제를 의식해 의결권의 상당 부분을 직접 행사하고 있다. 작년 상반기 국민연금이 행사한 의결권 3천297건 중 직접 행사한 안건은 1천857건으로 절반 이상이다.

이와 함께 우정본부가 수탁자활동 내역을 제때 공시도 하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우체국금융 수탁자책임활동에 관한 지침을 보면 제12조 공시 조항에서 수탁자책임활동 내역과 상장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 내역을 공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의결권 행사 내역은 주총으로부터 14일 이내, 수탁자활동 내역은 반기별 공시가 원칙이다. 하지만 우체국금융 홈페이지에 공시된 마지막 의결권 행사 내역은 2021년 1월의 키다리스튜디오가 마지막이다. 그 뒤로는 무려 2년 가까이 의결권 행사 내역이 홈페이지에 제대로 공시되지 않은 것이다.

우체국금융의 수탁자활동지침은 자금운용 업무에 지장을 주거나 금융시장 안정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으면 공개하지 않기로 하거나 공개 시기를 조정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간 국민연금의 공시 내역과 대조한다면 공시 의무 소홀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정사업본부
[연합뉴스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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