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월가는 2월 들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있는 워싱턴보다 일본 도쿄로 더 많은 시선을 보냈다. 일본은행(BOJ)의 총재가 10년 만에 바뀌면서다. 기축 통화인 일본 엔화의 발행을 관장하는 BOJ 총재 교체는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상당한 파장을 남기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독불장군식으로 초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한 BOJ의 행보가 달라질 수도 있어서다.

특히 일본국채(JGB) 특정 만기물 수익률을 일정 수준 아래에 묶어 두기 위한 BOJ의 수익률곡선통제정책(YCC)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증폭시킬 수 있는 진앙으로 지목됐다.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말에 특별 보고서를 통해 BOJ가 YCC 정책에 대해 유연성을 확대하고 글로벌 금융시장과 소통을 강화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IMF는 10년물 기준 0.50%인 장기물 수익률의 변동폭을 추가로 확대하거나 단기금리를 조정하라고 강조했다. 채권매수 물량을 조정하는 방법도 선택지 가운데 하나라는 게 IMF의 진단이다. 사실상 주요 기축 통화를 가진 일본에 대해 상당히 모욕적일 수도 있는 권고 사항이다.

IMF가 이처럼 직설적으로 BOJ를 압박하는 이유는 엔화를 중심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이 그만큼 커질 수 있어서다.

당장 BOJ의 통화정책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규모만 3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 연기금, 금융기관, 이른바 와타나베 부인(Mrs. Watanabe)으로 불리는 일본의 개인투자자들이 보유한 미국 국채 및 주식만 1조5천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오랜 기간 사실상 제로금리 수준에 묶여 있던 엔화는 네덜란드에도 국내 총생산(GDP) 9.5%에 이르는 돈이 투자된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도 8%가 넘는 수준의 엔화가 나가 있고 영국과 캐나다에도 엔화를 바탕으로 하는 일본 투자자금의 비중이 GDP의 4%에 이른다.

달러-엔 환율이 지난해 10월 21일 장중 한때 151.942엔을 기록하는 등 19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YCC 무력화에 대한 우려가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달러-엔 환율 주봉 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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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J는 이후 JGB 10년물 수익률을 연 0.25% 묶어 두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 수익률 상한선을 0.50%로 전격 확대했다. 월가는 BOJ가 YCC를 사실상 폐지하거나 10년물 수익률을 연 1.00%까지 확대하는 게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인포맥스(화면번호 6532)에 따르면 일본 JGB 10년물은 지난 15일에도 매수 호가가 0.506%에 형성되는 등 사실상 상한을 위로 뚫었다. 월가를 중심으로 공매도 세력 등이 상한선을 무력화하는 움직임을 집요하게 이어간 영향으로 풀이됐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디플레이션의 나라 일본도 드디어 인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1월 도쿄지역 근원(신선식품 제외)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4.3% 급등했다. 시장 예상치인 4.2% 상승을 웃도는 수준으로, 지수는 17개월 연속 올라 1982년 4월 이후 41년여 만에 최고치를 재차 경신했다. 도쿄 지역 근원 CPI는 일본의 전국적인 물가 추이의 선행 지표 역할을 한다. 앞서 발표된 12월 일본 전국 근원 CPI 상승률은 4.0% 올랐다.

엔화 절하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일본의 무역적자는 19조9713억 엔을 기록했다. 비교 가능한 통계가 있는 1979년 이후 최대치다.

여기에다 JGB 발행을 통해 재정 정책을 펼쳐온 탓에 일본 정부의 부채는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262.5%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다.

표면장력을 가진 물잔은 마지막 한 방울 탓에 흘러넘치기 마련이다. 새롭게 BOJ 총재 후보로 낙점된 우에다 가즈오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 진앙인 YCC를 어떻게 조정할지 월가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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