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뉴욕 월가의 최고위 임원진들이 최고급 패션 브랜드 등이 밀집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베벌리 힐스 로데오 거리 인근에 대거 등장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추세를 읽어낼 수 있는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가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개최됐다. 같은 기간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통화정책 방향 결정을 위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었지만, 이들에게는 뒷전이었다. 기준금리 25bp 인상이 기정사실이었던 연준의 FOMC 결과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보다는 밀컨 콘퍼런스를 통해 읽어내야 할 글로벌 금융시장의 트랜드가 더 큰 관심사였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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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디트가 최대 화두…정크본드의 제왕이 관련 세션 직접 주재

밀컨 콘퍼런스는 밀컨연구소가 1998년부터 매년 4월쯤에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여는 행사다. '미국판 다보스포럼'으로도 불린다. 글로벌 금융 현안은 물론 경제 동향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는 행사의 성격이 매년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와 닮은꼴이라는 이유에서다.

월가를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 지도자들이 로스앤젤레스(LA)에 운집한 이유는 이 행사를 주최하는 밀컨연구소의 설립자 마이클 밀컨의 이력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마이클 밀턴은 1980년대 고위험 고수익 채권인 이른바 정크본드 시장을 처음 개척한 인물로 '정크본드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당시 마이클 밀컨은 무려 10억달러에 이르는 성과 보수를 챙기며 승승장구했지만, 증권법 위반의 중범죄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투옥되기도 했다. 이때 부과된 벌금만 6억달러에 이른다.

그가 밀컨연구소를 설립해 각종 자선사업과 함께 밀컨 콘퍼런스를 개최하게 된 것도 이런 개인적인 이력이 작용했다. 암 투병을 통해 새 생명을 얻은 밀컨은 의료자선 단체도 설립해 많은 선행을 베풀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비롯해 제인 프레이저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 리시 카푸어 인베스트코프 CEO,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의 캐런 카르니올탬버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 등 기라성 같은 금융전문가들이 총집결해 130여개의 세션에 동시다발적으로 참석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이제부터 미국 등 글로벌 금융시장의 최대 화두는 신용경색 혹은 크레디트 크런치(credit crunch)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크레디트 크런치는 어떤 종류의 규제나 은행의 경영난 따위로 최고의 금융 긴축 상황에서 고금리를 물어도 자금을 모을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을 일컫는다. 금융시장을 시작으로 경제가 공황 상태로 전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 은행(SVB) 파산을 계기로 지역 은행들이 도미노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재 상황이 크레디트 크런치의 전조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행사 주최자이면서 크레디트 시장의 최고 전문가인 마이클 밀컨도 이례적으로 크레디트 관련 세션에 대해서는 자신이 직접 사회를 보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밀컨은 지난 2일 베벌리 힐스 힐튼호텔에서 'advancing a thriving world'를 주제로 열린 밀컨 콘퍼러스에서 'Credit Outlook'이라는 소주제의 세션을 직접 주재하면서 많은 금융 부문의 신뢰에 금이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 생보사 줄도산했던 1980년대와 닮은꼴

이날 세션에 토론자로 참석한 구겐하임 파트너스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CIO인 앤 월시 는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양적긴축(QT)까지 진행되는 지금의 상황이 생보사가 줄도산하며 신용경색 상황까지 치달았던 지난 1980년대와 닮은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처음 금융계로 진출했던 1980년대도 지금과 비슷한 양적긴축이 있었다고 회고했다.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폴 볼커는 금리를 올리는 한편 현재와 같은 양적긴축 상황을 연출해 자산과 부채 미스매치에 시달렸던 생보사를 줄도산 위기에 몰아넣었다고 그는 소개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지금 미국의 지역은행에서 되풀이되고 있으며 금융회사 모두에게 상당히 도전적인 환경이라고 강조했다.양적긴축은 역사적으로 드문 경우이지만 매우 고통스러운 기간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 크레디트 마켓 중심으로 기회도 있어…KIC 등 장기투자 기관도 비중 확대

하지만 일부 참석자들은 크레디트 마켓이 되레 투자자들에게 기회요인도 될 수 있을 것으로 진단했다.

토론자였던 HPS 인벤스트먼트 파트너스의 마이클 패터슨은 특히 항구적으로 사모 중심의 프라이빗 크레디트 마켓의 몫이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은행권의 건전성 강화 등으로 기업이나 가계에 대한 대출을 통한 노출을 줄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기업 등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은 지금도 진행형이며 크레디트 스프레드가 매력적인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그는 금리 상승기에 채권투자를 대체할 수 있는 사모크레디트펀드(Private Credit Fund)와 사모대출펀드(PDF:Private Debt Fund)에 대한 시장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사모대출펀드는 기업에 직접 자금을 빌려주는 형태이고, 사모크레디트펀드는 구조화 채권이나 부실 자산 등 보다 넓은 범위의 자산에 투자하는 형태다. 이들 크레디트 마켓은 기업 지분에 투자하고, 기업가치 상승으로 수익을 내는 사모펀드(PEF:private equity fund)와 달리 기업에 대한 대출을 통해 이자수익 형태로 수익을 낸다. 주로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 직접 대출을 집행해 PEF보다 수익성은 낮지만, 담보가 있어 리스크도 낮은 장점이 있다.

이들의 전망은 한국의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 등 장기투자기관을 통해 현실이 되고 있다. KIC 등이 금리 상승기에 헤지수단이 될 수도 있는 크레디트 마켓에 대한 투자 비중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서다.

진승호 KIC 사장은 같은 날 밀컨 콘퍼러스에서 'global investor's view:Korea'라는 소주제의 비공개 세션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는 등 긴축적인 통화정책에 따른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를 글로벌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 요인으로 꼽았다.SVB 파산 사태처럼 시스템 리스크의 문제점이 금융시장의 약한 고리에서 얼마나 갑작스럽게 나타날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사모크레디트펀드와 사모대출펀드 비중을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리 상승과 기존 은행의 유동성 축소로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기대된다는 이유에서다. 크레디트 마켓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화두가 될 것이라는 점이 국내 큰 손을 통해서도 확인된 셈이다.(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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