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간 랜싱에 새 배터리 공장 투자를 발표하는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책임자(CEO)
연합뉴스 자료 화면.


(서울=연합인포맥스) ○…한순간의 외도일까, 전략적 선회일까. 지난 봄,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갑작스럽게 삼성SDI와 합작 공장 설립을 한다고 발표했다.

'프로젝트 암스트롱'. GM이 끝까지 비밀에 부치던 인디애나 공장의 암호명이다.

공장 부지를 진작 확보하고도, 그리고 배터리 합작사가 발표된 현재도 GM과 주정부는 삼성SDI와의 현지 공장 건설 사업을 '프로젝트 암스트롱'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해당 기업은 물론, 지자체에서도 이 프로젝트 자체를 암호명으로 인식할 만큼 오랜 기간 준비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과거에도 GM은 이따금 코드 네임(암호명)으로 신사업을 극비에 부쳤다. 2000년대 초에 진행된 '글로벌 A 비히클'도 그중 하나다. GM의 차세대 전기차인 '쉐보레 볼트 EV'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다. 그리고 이 극비 프로젝트의 첫 파트너가 LG화학이었다.

LG화학과 손을 잡은 후 GM은 '디트로이트의 환자'에서 전기차 시장의 선두 주자로 재도약한다.

당시 리튬이온 배터리는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자동차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하지만, LG화학이 이 기술을 구현하고 GM 차에 탑재하면서 전기차 시장에 새 방향을 제시한다.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도 이때부터 LG의 배터리 제작 기술에 주목하게 된다. 성공적인 완성차-배터리 듀오의 탄생이었다. 그런 점에서 양사는 서로에게 첫사랑 같은 존재다.

이런 분위기에 양사는 2019년 아예 '얼티엄셀즈'라는 합작사를 세운다. 지분도 각각 50%씩 사이 좋게 출자했고 오하이오주 공장은 진작 가동했고 아직도 2개 공장의 구축이 남아있다.

첫사랑과는 정말 이뤄질 수 없는 건가. 얼마 지나지 않아 GM과 LG는 큰 화상을 입게 된다. 말 그대로 정말 화상이다.

2020년, 이들의 합작품인 쉐보레 볼트 EV에서 잇달아 화재 사건이 발생한다. 이때부터 2년간 GM은 총 14만대 이상을 리콜하게 된다. 양사의 동맹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화재 사건에 결국 LG에너지솔루션은 1조원 이상의 분담금을 내게 됐다. 배터리 사업이 제대로 분사하기도 전에 타격을 입은 것이다.

GM 입장에서는 단짝 친구 한명만 믿고 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전기차 수요는 폭증하고, GM 입장에선 안정적이고 합리적 가격에 부품을 조달받을 수 있는 사업 파트너가 필요하다. LG에너지솔루션 입장에서도 이미 진행되고 있는 설비투자가 조단위기 때문에 선뜻 신규 공장에 나설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2023년 4월, 메리 바라 GM 회장은 볼트 EV와 볼트 EUV를 올해 말까지만 생산한다고 공식화했다. 첫사랑의 종지부다.

이렇게 마무리된 줄 알았던 볼트 EV 화재 사건의 내홍은 여전히 미봉합된 상태다.

이달 초에도 GM의 쉐보레 화재에 대한 법적 분쟁이 재점화됐다. 뉴저지에서 진행되는 이번 소송은 개인 피해자들이 2019년에 발생한 쉐보레 볼트 EV 화재의 손해 배상을 주장하며 제기됐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없다. 누군가에겐 갑작스러웠을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수면 아래서 차근차근 정리를 해왔을 것이다.

사실 이미 GM은 중국 출시 전기차에 각형 배터리를 탑재하기 시작했다. 이에 각형 배터리에 특화한 삼성SDI와의 협업도 예상됐다. 오랜 파트너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각형 배터리 개발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삼성SDI와 GM이 합작법인(JV)을 설립할 것이라는 루머도 돌았다. 양사가 진작부터 물밑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GM이 왜 인디애나주 공장 사업을 '프로젝트 암스트롱'이라고 붙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국의 첫 우주 비행사인 닐 암스트롱이 인디애나주 퍼듀대학을 나왔다는 것, 그의 이름을 딴 '암스트롱 거리'가 공장 부지가 있는 세인트 조셉 카운티에서 4시간 거리에 있다는 것. 이 정도만이 알려졌다. 닐 암스트롱의 명언인 '인간에게는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도약이다'를 떠올려도 확대 해석이다.

다만, 오히려 어떤 것도 가늠할 수 없는 암호명이라는 점에서 GM이 진작부터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읽을 수 있다.

(기업금융부 김경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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