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예·적금 금리가 슬금슬금 오르고 있다. 일부 목돈이라도 쥐고 있는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주는 곳을 찾기 위한 '금리 쇼핑'도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하지만 더 높은 금리를 주는 은행 등 금융사가 자선 사업을 하는 곳은 아니다. 더 많은 자금을 끌어오기 위한 금융사 간 금리 경쟁이 과열될 테고, 이는 시장 금리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결국 대출이 필요한 금융소비자들은 더 많은 이자를 내고 돈을 빌려야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금융사 수신 잔액은 무려 96조2천500억원이 급증했다. 불과 넉 달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작년 9월 말 터진 레고랜드 사태가 결정적이었다. 자금 시장이 경색되고 채권 발행에 어려움을 겪던 금융사들은 고금리를 제시하면서 예·적금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이때 들어온 돈에 제공한 금리는 평균 연 5%대였다. 저축은행의 경우 6%에 육박하는 고금리로 자금을 모았고, 신협과 새마을금고 등의 상호금융도 연 5% 중반대의 금리를 줬다. 일부 2금융권에서는 연 10%대의 금리를 주기도 했다. 은행도 5%에 육박하는 고금리로 자금을 유치했다.

1년이 지났다. 통상 1년 만기로 예·적금을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만기가 돌아오기 시작한다는 얘기다. 1년 전에 줬던 이자를 다시 주지 못한다면 예·적금 가입자들은 돈을 빼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주는 곳으로 옮길 것이다. 그런데 1년 전보다 예·적금 금리는 크게 낮아진 상태다. 은행만 보더라도 올해 상반기 예금 금리는 연 3%대까지 떨어졌다. 최근 들어 다시 연 4% 수준의 상품이 나오고는 있지만 1년 전과 비교하면 1%포인트(p) 이상 낮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은행과 저축은행 상호금융사들은 다시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고객들이 돈을 빼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잡아 두려는 고육책이다.

은행들은 그나마 낫다. 4% 정도의 금리만 준다면 기존 고객의 재예치는 물론 다른 금융권의 고객도 끌어올 수 있다고 본다. 왜 그럴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지속하면서 그나마 믿을 수 있고 안전한 곳은 은행이라는 금융소비자들의 심리 변화도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그간 고금리 상품으로 고객들을 쓸어갔던 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사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에 대한 우려가 확산한 탓에 고객을 끌어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치열한 특판 경쟁이 벌어지면 직격탄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들 금융사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 경색과 기업 수익성 악화로 실적은 물론 건전성도 크게 나빠진 저축은행의 경우 상황이 녹록지 않다. 자본력과 건전성 제고를 위한 금융당국의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수익성을 개선하는 게 최대 과제인데, 고객을 유인할 적정 금리를 주지 못한다면 재예치는 물 건너간다. 1년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상위 5개 저축은행의 예금 잔액은 25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올해 2분기 79개 저축은행 중 적자를 본 곳은 무려 41곳에 달했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이 급전직하로 고꾸라진 상황에서 건전성 제고를 위해 대출 영업도 부진한데, 자금조달마저 제대로 안 된다면 수익성 개선은 요원하다. 재예치마저 부진하게 되면 고객 이탈도 불 보듯 뻔하다. 부동산 PF에서 시작된 저축은행의 어려움이 고금리 예금의 머니 무브로 더 가속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개별 금융권의 사정에만 있지 않다. 고금리 상품에 대한 경쟁이 과열되면 결국 대출 상품의 금리도 덩달아 오를 수 있다. 예대 마진으로 먹고사는 금융사들 입장에서 조달 금리가 높아지면 당연히 빌려주는 돈의 금리도 높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최근 가계부채가 급격히 늘어나자 50년 만기 대출 상품을 사실상 퇴출하는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 가계부채 총량을 억제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만기가 돌아오는 예·적금의 재예치 경쟁과 맞물려 기존 또는 신규 대출자들의 금리 부담은 오히려 커질 가능성이 있다. 경쟁이 과열되면 효용과 편익을 누리는 측이 있는 반면에 정반대의 입장에서 어려움을 감내해야 하는 측도 발생하게 된다. 한 곳을 세게 누르면 또 다른 곳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금융시장의 생리이기도 하지만, 부작용이기도 하다. 꼬리표는 없지만 100조원에 가까운 돈이 어떻게 움직일까. 시장 충격은 없어야 한다. 당국의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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