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얼마 전 한 빅테크 최고경영책임자(CEO)와 만났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빨리 생산해달라고, 언제까지 줄 수 있냐고 묻더라. 그만큼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이 잘 만든다는 거 아니겠냐."

국내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의 행복한 하소연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양사 임원들은 요즈음 전 세계 고객사들을 만나느라 동분서주한다. 인공지능(AI) 시대의 개막을 가장 최전선에서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AI 확산에 수요 급증…삼성·SK, HBM 선점 나서 (CG)
[연합뉴스TV 제공]

 

일상에서 만나는 AI의 수준은 그리 고차원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거짓말쟁이'라느니, 장난감 차원이라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지속적인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버블일 수도 있겠지만 허구는 아니다. 전 세계적인 IT 기업들과 반도체 업계가 총력을 다해 AI 시대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보는 AI 산업 구조, 이들의 공생 구조는 이렇다. '오픈AI'와 같은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개발하는 생성형 AI 서비스 기업은 '엔비디아' 등이 생산하는 그래픽처리유닛(GPU)을 필수로 한다. 연산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그런데 이 반도체가 제대로 성능을 내기 위해서는 '고성능'의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이 가장 잘하는 영역이다. 이렇게 주목받게 된 것이 HBM이다.

진작 이 시장에 뛰어든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 입장에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다. HBM은 D램을 여러 장 수직으로 쌓아 올린 구조로, 기존 메모리반도체보다 훨씬 많은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선제적으로 개발을 시작한 SK하이닉스가 과반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고, 삼성전자도 40% 이상까지 점유율을 확보했다.

이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HBM이 장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러한 삼각 공조에서 찾았다. 패러다임의 전환인데, 산업계는 물론 정부와 학계까지 맞들어도 모자랄 판이긴 하다.

그는 "누군가 AI를 비즈니스로 하려면 먼저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며 "결국 챗GPT라고 하는, (오픈AI의) 샘 알트먼이 시작한 AI가 전 세계적으로 빨리 퍼져야 (이 서버를 구축하는) 회사들도 혜택을 입는 것 아니겠냐"고 기대했다.

반도체 제조사들의 AI 패권 장악을 위한 움직임은 특허 동향에서도 엿볼 수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신경망회로(neural network)에 대한 특허를 68개가량 갖고 있다. 이 기술은 AI 학습의 핵심으로 꼽힌다. 인간의 신경망처럼 반도체가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심사관이 인용한 횟수가 무려 64건에 이른다. 심사관이 자주 이용하는 특허는 해당 기술이 선행적이고 진보적이라는 뜻이다.

삼성전자는 AMD의 AI용 슈퍼칩 MI300에 HBM3을 탑재하고 있으며, 연내 더 높은 성능과 용량의 차세대 HBM3P 제품도 출시할 예정이다.

이미 증권가에선 이런 돈 냄새를 맡았다. 증권사들은 일제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치를 손보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가 4분기에 소폭이지만 영업 흑자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증권사들이 제시한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손실 전망치는 약 1조8천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무려 1조원이나 줄었다.

투자자들도 냄새를 맡은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연초 7만3천원에서 현재 12만원대로, 삼성전자는 5만4천500원에서 7만원대를 돌파했다.

"돈이 말을 한다(Money talks)." 돈에는 그만큼 힘이 있다는 얘기다. 이 돈이 맞는 말을 얘기하고 있는지는 향후 실적이 대답할 것이다.

(기업금융부 김경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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