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금리 인하 사이클 진입에 대한 기대는 사실상 꺾였다. 올해 말을 기점으로 금리 인하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은 공염불이 돼 가고 있다. 금리를 내릴 시점을 고민해야 한다고 자신 있게 떠들던 전망가들은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듯하다. 특히 세계 금리를 좌지우지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적어도 금리를 내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전처럼 연속적으로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지는 않겠지만, 금리를 내릴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종료 시점이 언제일지 알 수는 없지만 고금리 상황은 '쭈~욱' 계속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50년 만기 주담대 한도 줄이고 특례보금자리론 기준 강화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금융위원회가 13일 '가계부채 현황 점검 회의'를 열고 가계대출 급증 원인으로 지목되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관련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만기를 최장 40년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과잉 대출의 여지가 있는 특례보금자리론 기준도 강화돼 일반형 상품 지원 대상자와 일시적 2주택자는 신청자격에서 제외된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붙은 주택담보대출 및 특례보금자리론 관련 현수막. 2023.9.13 dwise@yna.co.kr

비단 연준만의 생각은 아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내로라하는 인사들도 5%를 넘어 7%대 금리를 얘기하고 있다. 실제 3일(현지시간) 10년물 미 국채 금리는 연 4.81%로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30년물 미 국채 금리는 4.95%로 5%에 육박했다. 올 초부터 쭉쭉 오르던 미국 주식시장은 힘을 못 쓰고 있다. 올해 장사를 다 한 분위기다. 연일 치솟던 대표 종목들의 목표주가는 하염없이 내리는 주가에 머쓱해졌다. 고금리 장기화의 공포 때문이다.

금리가 오르면 늘 따라붙는 게 빚의 문제다. 부채라는 게 특정 시점에, 특정 이율을 더해 반드시 갚아야 할 목적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금리의 출렁임에 따른 민감도는 클 수밖에 없다. 돈을 빌려준 쪽도, 돈을 갚아야 할 쪽도 모두 금리 흐름에 조마조마한다. 원금이라도 떼이면 어떻게 하지, 또는 이자도 못 갚으면 어찌하지. 서로 반대의 입장이지만 모두의 고민은 금리로 수렴한다. '금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계속되는 셈이다.

가계부채가 최근 들어 급증세를 타고 있다고 난리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중 금융시장 동향' 자료를 보면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1천75조원으로 5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등 주택 관련 대출은 한 달 새 7조원 늘어났다. 42개월 만에 최대 증가 폭이라고 한다. 가계대출만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기업 대출은 1년 새 130조원이나 급증했다. 증가율은 7.5%를 넘어선다. 어찌 보면 고금리 상황이 계속되는 속에서도 대출이 급등하는 이러한 현상은 기이하다고 볼 수도 있다.

단기간에 빚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 분명 좋은 신호는 아니다. 특히 총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보다 단기간에 늘어나는 속도가 빠른 게 어찌 보면 문제일 수 있다. 이유는 있을 터. 가계 측면에서 보면 집값이 더 이상 내리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가 크게 영향을 줬을 것이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직방이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8월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 중 직전 거래가보다 1% 이상 상승한 가격에 거래된 건은 전체의 52.90%에 달했다. 22개월 만에 최고치였다. 이에 반해 직전 거래보다 1% 이상 하락한 거래 비중은 30.77%에 그쳤다. 전국으로 넓혀봐도 상승 거래 비중은 47.71%로 2021년 11월 이후 최고였다. 집값이 바닥을 쳤다고 판단하고 성사된 거래가 이전보다 많아졌음을 반영한다.

이러한 거래들은 은행 대출이 동반됐을 테고, 당연히 주택담보대출의 총량은 급증하고 속도도 빨라졌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신규 아파트 입주를 위한 집단대출이 많이 늘어난 것도 전체 가계대출 증가에 영향을 줬다. 가계대출 급증의 주범으로 몰렸던 은행권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중 55%가 집단대출이었다. 개별 주택담보대출은 이보다 1조원 가까이 적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러한 주택거래와 대출이 투기 수요라고 볼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가격 하락세가 더디긴 하지만 주택 가격은 이전에 비해 분명히 떨어졌고, 더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있다면 수요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 과정에서 대출은 자연스럽게 동반된다. 고금리가 좀 더 계속될 것이란 전망에도 불구하고 수요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부동산 경기 불확실성에 추가 공급마저 차단되는 상황에서 수요자 입장에서는 좀 더 빨리 움직이고 싶을 것이다.

전 정부에서 추진하던 대출 총량제와 같은 인위적인 대출 규제를 현 정부가 따라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계대출이 늘어나 경기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면 관리들은 뭐라도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강박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은행권 대출 심사는 이미 까다로울 만큼 까다로워졌다. 벌어서 원리금을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대출해 주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는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현 상황을 '시장의 실패'라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인위적인 규제는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정부가 특례보금자리론에 대한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일단 상황을 좀 더 지켜 보는 게 낫다. 빚을 내고 빚을 갚는 것을 도덕의 기준으로 보면 안 된다. 상환 능력도 안되면서 무리하게 빚내는 사람은 없다. 은행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주지도 않는다. 부실 가능성은 이미 금리에 반영된다. 수요자는 그런 것을 다 고려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경제 활동이 멈추기 전까지 '빚의 경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경제도 돌아간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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