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어느덧 14회째다. 1996년 시작해 격년으로 개최되는 국내 최대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인 '서울 ADEX 2023'이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17일부터 22일까지 열린다. 올해 행사에는 34개국의 550개 업체가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 2년 전의 28개국, 440개 업체와 비교하면 참여국과 기업이 대폭 늘어난 셈이다. 미국 등 동맹국에 대부분을 의존했던 우리의 우주항공·방산 체계는 십수 년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다. 'K-방산'의 위용이라 할 만큼 전 세계가 주목한다.

K-방산의 힘
(성남=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16일 오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국내 최대 항공우주·방위산업 전시회 '서울 ADEX 2023' 프레스데이에서 고공강하팀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2023.10.16 hwayoung7@yna.co.kr

 

그간 우리 정부와 주요 방산 기업들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내놓은 무기체계를 사들이기 위해 주요국의 바이어들은 한국을 찾는다. 이번 ADEX에 57개국의 주요 국 군관계자와 방산기업 최고경영자, 바이어 등이 대표단을 보냈다. 단순히 우주항공·방산 체계의 발전상을 과시하는 것을 넘어서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는 셈이다. 정부는 이번 행사에서 이뤄질 사업 관련 상담액이 무려 33조원(2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에만 무려 173억달러를 수출하면서 역대 최대를 기록한 K-방산 수출에 더없이 좋은 장(場)이 서는 셈이다.

지난 4월 말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은 제1차 방산수출전략평가회의를 열었다. 국방부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방위사업청 등 관련 부처는 물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LIG넥스원, KAI, 풍산 등 국내 굴지의 방산 기업들도 총출동했다. 방산수출전략평가회의는 사실상 K-방산 수출 확장을 위한 정부의 최고위급 콘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방위산업은 미래 신성장 동력이자 첨단사업을 견인하는 중추"라고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회의체이기도 하다. 사실상 중장기 방산 수출의 확대를 위한 민관 간 긴밀한 협조 체계를 위한 가동이 본격화하는 신호탄이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방산 기업들의 뛰어난 기술력으로 꽃길만 갈 것 같았던 K-방산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방산 수출에 필수적인 금융 지원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글로벌 기업 경쟁력 강화 모임'에 참석한 이성수 한화 사장은 구구절절하게 정부가 금융지원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다른 나라에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금융지원이 필수적인데 현재 여건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방산은 사실 조선이나 플랜트, 원전 등과 같이 대표적인 수주 산업이다. 수주 규모가 작게는 수천억 원에서 수십조원에 달하다 보니 수주 성공 여부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 갈라진다. 수주 성공에 목을 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수주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게 있다. 파이낸싱이라고 하는 금융지원이다. 수주에 성공하더라도 프로젝트 기간이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넘다 보니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 프로젝트 기간의 자금 미스매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를 가져와야 고객도 계약서에 최종 사인을 해준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더라도 돈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지난해 초 한화디펜스가 이집트에서 2조원짜리 K9 자주포 수출계약을 따내는 데는 수출입은행의 금융지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수은은 2조원의 80%인 1조6천억원을 이집트에 대출해 줬다. 좀 엉뚱해 보이긴 해도 방산 시장에선 흔한 일이다. 프랑스는 과거 이집트에 라팔 전투기를 팔면서 대금의 80%를 차관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인도네시아에 T-50 고등훈련기를 팔 때도 수은은 1조5천억원을 대출해 줬다. 국책은행이 방산 수출의 첨병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산 수출을 위한 금융지원의 가장 앞에 서야 할 수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처지에 봉착했다. 돈을 지원해주고 싶어도 해 줄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수은의 현재 법정자본금은 15조원이다. 하지만 이 중 98%가 이미 소진된 상태다. 방산 등의 기업에 금융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자본금 한도를 늘려야 한다. 현재 국회에 자본금을 30조원으로 늘리는 법안이 계류돼 있지만 논의는 막혀있는 상황이다. 특정 기업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자기자본의 40%까지 제한하고 있는 점도 발목을 잡고 있다.

이렇다 보니 최대 30조원으로 추정되는 폴란드에 대한 방산 수출 2차 계약도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수은법을 개정해 자본금 한도를 대폭 늘려주거나 신용공여 한도를 풀어줘야만 수은이 폴란드에 무기 매입 자금을 지원해 줄 수 있다. 그런데 국회가 움직여 주지 않으면 모든 게 흐트러진다. 경쟁국들은 이러한 우리의 사정을 모두 꿰뚫어 보고 있다. 우리가 무기를 팔려고 공들인 국가를 상대로 소위 '작업'에 들어가기 좋은 소재가 된다. 설사 이런 것들을 모두 물리치고 우리가 최종적으로 수주에 성공한다고 해도 조건은 나빠져 있을지도 모른다. 방산은 단순히 한 기업이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과 다르다. 정부와 금융기관, 기업들이 한 몸으로 움직여야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 정치가 K-방산의 흥행을 방해해선 안 된다.

(정책금융부장)

pisces738@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1시 17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