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조지 오스본 전 영국 재무장관은 2016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칵테일형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당시 세계 경제는 동시다발적인 악재가 터져 위기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브라질과 러시아의 경제위기에 중국발 경기 둔화가 더해져 글로벌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었고, 중동발 정세 불안과 북한의 수소탄 실험 등 경제 외적인 불확실성도 커져만 갔다. 오스본 전 장관은 이러한 상황을 다양한 술과 음료를 혼합해 만든 칵테일에 빗대어 설명했다.

이에 앞서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에는 아마겟돈을 빗댄 말들이 유행했다. 대형은행들의 파산과 금융시스템 붕괴를 금융 아마겟돈으로 표현했고 그리스에서 발생한 재정위기는 화폐이름(드라크마)을 따서 '드라크마겟돈'으로 불렸다. 세금폭탄을 의미하는 택스마겟돈, 폭설로 인한 충격을 의미하는 스노겟돈까지 나오며 아마겟돈은 공포의 대명사가 됐다.

요즘은 판토포비아(Pantophobia)라는 말이 유행한다. 사전적 의미는 모든 것(Pan-)에 대한 공포(Phobia)다. 종류를 가리지 않는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서 모든 것이 두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BNY멜론의 밥 새비지 스트래티지스트가 만든 이 말은 최근 시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WTI와 브렌트유 현물동향
연합인포맥스 매크로차트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불거진 국제유가의 급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전 세계적인 물가 폭등과 그로 인한 고금리 체제 등 끝없는 악재가 나오며 시장을 지치게 하고 있다. 국제유가는 150달러를 돌파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전망이 나온다. 유가가 150달러를 돌파하면 모든 경제 패러다임이 바뀐다. 기업이든 정부든 모든 계획을 수정하고 판을 새로 짜야 한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분기 실적 발표 후 성명에서 "세계는 지금 몇십년 만에 가장 위험한 시기에 처해 있다"며 "중동 전쟁이 에너지, 식료품 시장은 물론 세계 무역과 지정학적 관계에서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도 "전 세계적으로 공포는 증가하고 희망은 줄어들고 있다. 공포의 증가는 소비 위축을 초래한다. 공포는 장기적으로 경기침체를 낳으며 공포가 계속 커질 경우 유럽과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와 중동에 이어 또 다른전쟁터가 어디가 될지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지정학적 위기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대만 등 동북아시아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기후변화와 자연재해같이 인류 앞에 놓인 공통의 위기도 있다. 경제 논리가 환경 논리를 앞서고 있는 까닭에 신경 쓰는 이는 많지 않지만, 지구와 인류의 존립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이슈가 기후문제다.

모든 위기엔 공통점이 있다. 위기엔 반드시 이유가 있으며,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취약한 곳을 찾아 전염된다. 칵테일형 위기도, 금융 아마겟돈도 동시다발적 위기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영국 콜린스 사전이 작년에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영구적 위기(permacrisis)다. 위기를 촉발하는 변수들이 상수로 자리 잡으며 장기간 지속되는 위기라는 의미다.

세계 정세와 경제의 불확실성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충격파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 급격한 글로벌 자금의 유출입과 시장의 변동성은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시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상시화된 위기 속에 긴밀히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세계은행과 JP모건의 다이먼 CEO, 블랙록의 핑크 회장 등 글로벌 구루들이 연일 위기를 입에 올리고 있는데, 우리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위기가 왔는데 위기의식조차 없다는 건 진짜 위기신호일지 모른다. 영구적 위기의 시대에 비상한 생존전략이 요구된다. (편집해설위원실장)

jang73@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0시 26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