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이 기로에 서 있다. 고금리(긴축적) 통화정책에서 완화적 통화정책을 의미하는 피봇(pivot)으로의 전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아직은 미국 경제가 침체된다는 뚜렷한 신호는 없다. 미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대비 연율 4.9%를 기록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 경제는 경기 침체는 물론이고 경기 하강이라는 용어조차 붙일 수 없을 정도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지난 1분기와 2분기 경제성장률이 각각 전기대비 연율 2.2% 및 2.1%에 그쳤다는 점과 비교해 볼 때, 3분기는 두 배가 넘는 경제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 연준이 작년 3월부터 올해 7월까지 불과 1년여 조금 넘는 짧은 기간에 0.25%에서 5.50%로 정책금리를 급등시켰는데도 불구하고 경기가 꺾이지 않고 있는 점은 그들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키는 명분이 된다. 금리를 올렸을 때 우려되는 실물 경기 침체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이어 이번 11월 FOMC에서 연준은 두 번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연준이 금리를 동결한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본다. 첫째, 3분기 경제성장률의 호조 속에 감춰진 경기 둔화 가능성이다. 3분기 전기대비 연율 4.9%의 경제성장률의 주된 기여 섹터는 소비이다. 미국의 소비자 지출은 2분기 전기대비 연율 0.8%에서 3분기에 4.0%로 급증했다. 이 민간소비의 성장기여율은 55%에 달한다. 3분기 소비가 좋았던 이유는 탄탄한 고용 시장에 따른 소득 확충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 축적된 가계 저축을 바탕으로 소비시장이 호황을 보였던 것에 기인한다. 그러나 앞으로도 민간 소비가 성장을 받쳐 줄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우선 고용 시장의 냉각 가능성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설비투자와 비슷한 개념인 '장비투자'는 이번에 마이너스(-)3.8%로 감소했다. 민간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는 것은 이런저런 글로벌 시장 불확실성이 높은 가운데 고금리로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 비용이 너무 부담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는 고용 시장의 냉각으로 이어질 것이고 민간소비를 위축시키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한 가지 언급되는 것으로 그동안 축적된 민간 저축이 고갈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모아 둔 돈으로 소비가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소비를 받쳐줄 만큼의 구매력을 가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둘째, 물가 경로가 예상보다 속도가 느리기는 하지만 안정화되는 모습이다. 지난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동월대비 3.7%로 시장 전망치보다는 소폭 높고 8월과 동일한 수준이다. 그러나 연준의 금리 결정의 준거 지표로 사용하는 근원 소비자물가상승률은 8월 전년동월대비 4.7%에서 9월 4.1%로 크게 둔화되었다. 특히 최근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여전히 높은 것은 주거비에서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9월 통계에서 주거비 상승률은 전년동월대비 7.2%에 달하였다. 주거비는 전체 소비자물가지수의 절반, 근원 소비자물가의 약 30%의 가중치를 가진다. 그런데 많은 전문가들은 이 주거비 상승률이 향후 빠르게 낮아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로 치면 주택담보대출금리와 같은 모기지금리가 2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데, 이는 주택수요의 위축과 주택시장의 냉각 그리고 그것에 연동될 수밖에 없는 주택임대료(주거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의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앞으로 상당 부분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해볼 수 있을 것이고 연준의 긴축적 통화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셋째, 정책금리를 더 이상 올리지 않고 동결하고 있음에도 시장금리가 상승하면서 정책금리를 인상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미국 채권 시장에 공급 물량이 쏟아지기 때문인데, 주된 원인은 연준의 양적긴축(QT)과 행정부의 국채 발행 물량 때문이다. 양적긴축은 연준이 보유한 채권(국채)을 시장에 파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다. 채권을 팔고 달러화를 연준이 가져가기 때문에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분류된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연준의 정책금리가 제로금리(금리하한)까지 떨어졌는데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아, 연준은 시장에서 국채, 모기지채권, 회사채 등을 사들이면서(채권은 연준의 자산이 됨) 대신 달러화를 시장에 푸는 양적완화(QE) 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그 결과 연준 자산 규모는 코로나 팬데믹 직전 4조 3천억 달러에서 2022년 4월경 9조 달러까지 급증하였다. 이후 양적긴축을 병행하다가 최근에는 채권 매각을 가속해 10월 현재 8조 달러까지 축소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을 목표로 할 경우, 향후 추가적으로 매각되는 규모는 약 4조 달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 국채의 신규 발행 물량도 만만치 않다. 올해 8월 3대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연방정부의 대규모 재정적자를 근거로 미국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바 있다. 그리고 지금 미 의회와 행정부는 대규모 재정적자로 편성된 내년 예산안을 가지고 아직도 싸우고 있다. 재정적자는 대부분 국채 발행으로 충당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국채 시장의 또 다른 공급 요인이 되어, 국채금리는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초 종가 기준 3.85%에 불과했던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10월 19일 4.99%로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이르렀다. 연준이 정책금리를 인상하지 않아도 시중금리가 올라간다면 굳이 금리를 인상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와 더불어 최근 중국이 미 국채 보유 물량을 줄이는 것도 시중금리를 상승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위안화 환율 방어가 필요한 중국이 작년에 약 1천700억 달러 그리고 올해에도 약 600억 달러의 미 국채를 내다 팔았다. 그럼에도 위안화 환율이 여전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중국의 미 국채 매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남은 한 번의 FOMC는 5.5%의 현 금리 수준을 다시 동결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단, 연준이 종종 생각지도 않는 몽니를 부리는 경우가 있어, 금리 인상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현재 시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경로를 생각해 본다면, 5.5%가 끝이다. 그리고 내년은 상황에 따라 시점은 상반기일 수도 하반기일 수도 있지만,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물론 지금 연준은 금리인하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정책금리가 우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면, 결국 우리 정책금리도 내년 언제쯤에는 피봇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미국도 한국도 과거 정책금리가 인하되기 전에 시장금리가 먼저 하락하는 경험을 생각해 보면, 금리 하락기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가계도 기업도 높은 부채 수준으로 고금리가 부담되는 상황에서 피봇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그러나, 시장은 예측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의 고금리가 장기화될 요인도 여전히 상존한다. 그래서 예상대로 금리가 하락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대비해야 하고, 또 금리가 하락하더라도 그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당분간은 조심스러운 시장 접근이 필요하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이사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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