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총리, 경제부총리, 주요 부처 장관들, 여당인 국민의힘의 당 대표,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등은 매주 모여 머리를 맞댄다. 고위 당정 협의다.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제안해 정기적인 협의체를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부쩍 민생을 강조한다. 고위 공직자는 물론 당도 민생현장으로 더 파고들어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당정이 민생을 주제로 논의하고, 즉각적으로 정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경우에 따라 입법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야당과도 협의하도록 하는 통로가 생겼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어찌 보면 늦은 감이 있다.

금융위원장에 쏟아지는 질문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청년동행센터 건물에서 현장 점검 일정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11.7 ondol@yna.co.kr

 

그런데 지난주 일요일(5일) 열린 당정 협의는 좀 엉뚱했다. 지난주 중반까지만 해도 국민의힘이 사전 공지한 당정 협의 안건은 통신비 절감 방안과 새만금 민간투자 유치현황 및 계획 등 2가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당정 협의를 취소한다고 했다가 비공개로 연다고 했다. 안건도 바뀌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여당 의원이 '다음 포커스는 공매도'라는 문자를 언론이 포착해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결국 5일 당정 협의의 안건은 공매도 금지 조치로 바뀌어 있었다. 당정 협의가 끝나고 나가는 유의동 정책위의장을 기자들이 둘러싸 질문을 쏟아냈지만, "(공매도 금지 조치에 대한) 우리의 요구를 좀 무겁게 받아들여 달라고 정부에 얘기했다"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날 오후 5시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언론 앞에 서서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6일 코스피는 무려 5.66%, 코스닥지수는 7.34% 급등했다. 코스피 상승 폭(134.03포인트)은 역대 최대였고, 코스닥지수 상승 폭(57.40포인트)은 지난 2001년 1월 22일 이후 최대였다. 각종 주식정보 사이트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만세'라는 글이 도배됐다. '친윤'으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정과 정의라는 시대정신이 반영된 결정이라 많은 분이 환호하고 있다"고 칭송했다. 하지만 '하루 천하'였다. 다 알다시피 7일 주식시장은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거의 모든 종목이 파란색이었다.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떨어졌다. 이번엔 '정부가 대놓고 주가 조작한다', '총선 때 보자' 등의 극단적 표현들이 주식정보 사이트를 도배했다.

급작스럽게 결정한 '휘발성 강한' 경제 현안을 둘러싸고 며칠 사이에 나타난 모습은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였다. 당정의 이번 결정에 대해 많은 금융 전문가는 '총선용'이라고 단언한다. 시기도 이유도 모두 그렇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얘기하지만, 주식시장에서 외국인과 기관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유동성과 정보를 가진 개미투자자들이 이길 방법은 많지 않다. 사실 공매도로 많은 개미투자자가 피해를 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계 시장에서 활용되는 제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더군다나 시장 안정이 절실한 금융위기 상황도 아닌데 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밸류에이션(가격산정)을 바로 잡기 위해 필요한 제어장치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더 큰 문제는 그간 변변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당정 협의 때 금융위도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최근까지만 해도 공매도 금지에 부정적이었다.

이번 일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와 민주당, 기획재정부의 갈등 관계가 떠오른다. 종합부동산세, 무차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다주택자 억제 등을 둘러싸고 당시 기재부는 당청과 극한 갈등 상황이었다. 기재부는 당청의 입장에 그나마 맞서기라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모두 당청의 입맛대로 됐다. 당시 민주당이 내세웠던 논리는 간단했다. "국민이 뽑은 선출직이 하라면 하는 것이지 임명된 공무원이 왜 이렇게 토를 다느냐". 그렇게 해서 종부세도, 추경도, 각종 부동산 억제 대책도 나왔다. 결국 그렇게 결정된 정책들은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총선이 딱 5개월 남았다. 매주 열리는 고위 당정에서 또 어떤 뜬금없고 엉뚱한 정책들이 나올지 모른다. 민생에서 시작한 포커스가 점점 총선 대비용으로 바뀌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임명직' 공무원들의 말도 좀 경청해야 한다. '선출직'은 나라의 미래를 주도한다는 자부심이 있겠지만, '임명직'은 아주 작은 정책이라도 '동티'가 나지 않도록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다. 총선이 중요하더라도 공무원에게 과도한 고통을 분담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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