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공매도를 바라보는 투자자로서의 개인과 기관의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공매도 악마화'는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개인의 주장일 뿐이라던 이 논리는 총선과 대선 등 정치적 주요 일정과 맞물릴 때마다 주기적으로 힘을 받곤 했다. 전면 금지된 공매도에 대해 "총선과 같이 끝나겠죠"라는 한 자산운용사 대표이사(CEO)의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공매도를 찬성하는 쪽인 기관, 특히 증권, 자산운용업계는 꾸준히 금융당국과 소통하면서 코스피200과 코스닥150에만 허용되던 공매도가 곧 전면 재개할 것이란 기대를 품고 있었다. 업계의 희망 섞인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국민청원, SNS 등 개인투자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들이 많아지면서 발언권도 세지고 있다. 공매도 제도개선안을 내놨지만, 불만은 여전하다.

이제서야 업계는 소통을 통해 개인투자자들의 오해를 풀어줘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 결과물이 지난 4일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금융투자협회 등 증권유관기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공매도 제도개선 토론회'다.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공매도 제도개선을 했다는 설명이 주요 골자다.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의 대차 상환기간을 개인과 동일하게 90일로 제한하되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담보유지비율은 개인을 기관과 동일하게 105% 이상으로 인하했다.

개인투자자들은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공매도 시장 자체가 외국인과 기관에 유리하게 설계돼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공매도는 역사적으로 정보에 밝은 쪽에게 유리했다. 역사상 기록된 최초의 공매도도 1609년 한 네덜란드 상인이 영국 함대가 동인도회사를 공격한다는 정보를 듣고 미리 동인도회사 주식을 빌려서 팔아 큰돈을 벌며 시작됐다.

강형구 한양대학교 교수는 "공매도가 가격이 150까지 올라간 종목을 적정 수준인 100까지 내려주는 가격 조정 효과가 있다고 한다면, 이때 50을 얻는 건 외국인·기관 투자자고 개인은 50을 잃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저평가된 한국시장에 '고평가된 버블을 정상화'한다는 공매도가 필요하냐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공매도는 주식시장에서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기도 하다. 정상 가격 발견 기능을 한다는 시장 내 엄연한 역할이 있다. 공매도가 가능한 시장에서는 시세 조종 세력이 교묘하게 주가를 올리는 행위가 거의 불가능하다.

주식거래 역사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네덜란드 튤립 버블 때도 공매도는 버블 붕괴에 일조했다. 튤립값 하락을 예상한 투자자들이 튤립 뿌리를 대신하는 보증서를 빌려 매도하는 방법을 쓴 것이다.

문제는 제도 자체가 아닌 제도를 악용하는 세력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 세력을 제대로 적발하고 단죄하고 있느냐 여부다. 불신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증권업계에서는 한국이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 강도가 약하다는 건 오해라고 항변한다. 한국은 불법 공매도로 얻은 이익이 아닌 불법으로 주문한 전체 금액에 대해서 과징금을 부과하고 형사법을 적용해 징역까지 살게 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달리 실제로 처벌받은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개인투자자들의 주장이다.

김한기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실장은 "공매도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신뢰 회복이 필요한데, 금융당국은 그동안 불법 공매도로 처벌받은 외국인 투자자와 해당 종목에 대한 정보를 비공개하고 있다"며 "현재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이 적절한지 여부는 이에 대한 정보공개가 선행돼야 판단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들이 '전산화'를 강조하는 이유도 공매도 거래를 투명하게 해달라는 요구와 일맥상통한다.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2020년에는 국회, 유관기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결과 어렵다고 결론이 났으나, 그간 변화된 시장환경과 IT기술을 고려해 내년 상반기까지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가 공동으로 TF를 구축해서 다시 검토키로 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도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내용이다.

빈기범 명지대학교 교수는 "전산화를 한다는 건 장외시장을 장내시장화 한다는 의미"라며 "외환시장에도 딜러시장과 대고객시장이 구분되는 것처럼 주식시장에도 대차와 대주가 있는 것인데 이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표현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변화라면 이를 충분히 설명해주는 것도 어쩌면 정책당국과 유관기관의 일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그간 공매도와 관련해 투자자들이 가진 불만 사항에 대해 귀를 열고 제대로 듣지 못했고 제도에 관해 설명할 기회도 갖지 못했던 것 같다"며 "이번 토론회는 그런 측면에서 마련됐다"고 말했다. (투자금융부 송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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