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세대교체'가 키워드가 된 2023년 말 증권가. 1960년대생 임원들이 물러나고 1970년대생 임원들이 등판했다.

기쁨도 잠시다. 1970년대생 임원들에게 '우리도 잠깐일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장기간 군림한 선배들과 1980년대생 후배들 사이 낀 세대라는 하소연이 나온다.

지금 당장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모두에게 언젠가는 눈앞에 놓일 퇴직길. '33년 한투맨' 이희주(61) 전 한국투자증권 전무가 쓴 시집 '내가 너에게 있는 이유'에는 그 길을 먼저 걸어본 선배가 전하는 말들이 담겨있다.

한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9년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인 한국투자신탁으로 입사하며 증권 생활을 시작했다. 한투에서만 영업점과 경제연구실, 마케팅부, 홍보실을 거쳐 커뮤니케이션본부장(전무)까지 역임한 뒤 지난해 퇴임했다.

1bp 차이까지 긴밀하게 대응하는 치열한 여의도 생활 속에서도 지난 1989년 '문학과 비평' 가을호에 시 16편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1996년 첫 번째 시집 '저녁 바다로 멀어지다'부터 '물에 의지하는 물방울' 등을 펴냈다.

이성과 감성을 오가는 '투잡러' 생활을 이어오며 직장인으로서의 감정을 시로 풀어냈던 그가 퇴직 후 심경이 담긴 시집 '내가 너에게 있는 이유'를 선보였다. 총 4부로 구성된 68편의 시에는 퇴직 후 그가 느끼는 감정이 솔직하고 담담하게 담겨있다.

그는 '퇴직'이라는 간단한 단어를 "직장생활 시절 쓴 '명패를 닦으며'를 버린다"는 문장으로 치환하며 열정 넘치던 젊은 시절과 퇴직 후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준다.

"헐렁한 양복의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책상 위 명패를 둔 임원이 되기까지 나름 바람 불고 서리 내리던 삼십 년 세월을 가늠해 보았던 시. 이제는 필요 없는 시"

'전어나 우리나'라는 제목의 시에서는 직장인인 '우리'가 사실은 아득한 바다에서 잡혀 와 칼을 맞거나 불에 타는 '전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씁쓸한 소감도 전달한다.

"아득한 바다에서 잡혀 와 칼을 맞거나 불에 타거나 좌우지간 스스로의 운명을 알지 못할지니 어쩌나 전어나 우리나"

30여년 직장생활 동안 감내했던 모독과 슬픔을 놓아주며, 퇴직해보니 깨달은 진리도 전한다.

"콩나물에 물을 주다가 문득, 산다는 것이 꼭 치열해야 하는 것인지 누군가를 위해 헌신해야만 하는 것인지 이 세상 시루 속 지치고 쓸쓸한 당신을 들여다본다"

이희주 시인이 보여주는 '고민하고 번뇌하는 모습'은 직장인 모두에게 한편의 예고편 같기도 하다.

"직장에서의 마지막 퇴근길, 진정 이 길이야말로 이제서야 나를 내게로 돌아오게 하는 길이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던 그날을 생각한다"는 이희주 시인의 구절을 마지막으로 남겨본다. (투자금융부 송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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