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필중 기자 = 재작년까지만 해도 상장지수펀드(ETF) 순매수 기조를 유지했던 은행이 작년 들어 순매도로 전환했다. 운용업계에서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우려가 커지면서 은행 신탁에서 자금이 유출되는 것 아이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11일 연합인포맥스 업종별 거래(화면번호 3301)에 따르면 은행은 작년 한 해 동안 3천414억 원어치 ETF를 순매도했다. 2022년(1조1천96억 원), 2021년(4조126억 원) 모두 순매수였는데 작년부터 순매도로 전환한 셈이다.

작년 상반기에 매도 물량이 나온 뒤 10월 이전까지는 매도 및 매수가 번갈아 일어났지만, 그 이후에는 순매도세가 뚜렷해졌다.

이를 두고 운용업계에서는 홍콩H지수 ELS 손실 여파로 은행의 ETF 신탁도 위축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은행의 ETF 신탁은 운용사의 목표전환형 펀드와 비슷하게 운용됐다. 설정한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면 해당 자산들을 팔고 다시 목표 수익률을 설정해 매수를 권유하는 식이다.

은행 신탁의 규모도 작은 편은 아니다. 2020년 전까지만 해도 전체 ETF 시장의 10분의 1 이상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ETF 신탁이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홍콩H지수가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ELS 원금 손실이 예상되자 5대 시중 은행들은 작년 말 홍콩H지수 ELS 판매를 중단했다. ELS는 특정 주가지수 등을 기초자산으로 삼아 일정 수준까지 떨어지지 않으면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홍콩H지수 추이
출처: 연합인포맥스

 


올 상반기부터 만기가 도래하는 홍콩H지수 ELS 규모는 8조 원을 웃돈다. 대규모 투자자 피해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자, 현재 금융당국은 은행을 대상으로 투자 위험성 고지 등 불완전 판매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ELS 관련 잡음이 끊이질 않자 판매 역시 위축돼 매수 물량이 줄어든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자산운용사 한 관계자는 "작년에 2차전지 관련 ETF가 인기를 끌면서 한때 은행에서 1천억 원 넘게 거래됐는데, 지금은 10억 원대로 크게 줄었다"며 "신탁 팀에서 ETF와 ELS를 판매했는데, ELS가 위축돼 ETF 역시 업무가 정지되다시피 제동에 걸렸다"고 전했다.

자산운용사 다른 관계자는 "현재 신탁 상품을 권하기가 어려운 상황인 것은 맞다"며 "지금은 사후 관리가 우선이기 때문에 판매가 뒷선으로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은행 ETF 신탁이 위축되더라도 운용사 ETF 비즈니스에는 큰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 신탁 규모 자체는 꽤 되더라도 최근 ETF 시장 성장을 견인한 건 개인의 매수세다. 개인의 ETF 순매수 기준으로 살펴보면 2023년(1조8천172억 원), 2022년(5조3천275억 원), 2021년(9조7천347억 원) 모두 은행 거래 규모보다 컸다.

위의 다른 관계자는 "개인의 매매 비중이 더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ETF 신탁 비중이 낮아지고 있다"며 "운용자산도 꾸준하게 커지고 있어 (ETF) 비즈니스 자체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ETF 신탁 구조 특성상 설정한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지 못해 매수 물량이 줄어든 것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자산운용사 또 다른 관계자는 "2021년까지는 증시가 쭉 오르면서 ETF 신탁도 크게 판매가 됐었다"며 "이후로 증시 등이 하락하면서 당시 팔렸던 물량이 잠겨 있어 회전이 안 되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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