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2023년 1월 첫 칼럼의 제목은 '3高 해방일지의 시작'이었다. 2022년 말 정점에 달했던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에서 촉발한 금융시장 불안이 진정되면서 새해 들어 낯선 평화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연초부터 해방이 시작되면서 금융시장은 안도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렇다 보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도산 같은 갑작스러운 변수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 뒤에도 시장의 놀람은 연중 내내 계속됐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UBS의 크레디트스위스(CS) 인수, 새마을금고 사태, 해외상업용 부동산 시장 냉각, 국내 가계부채 우려 등이 줄줄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올해도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는 또 발생할 게 뻔하다. 올해 전세계에 정치선거가 이어지는 데다 지정학적 이슈도 연초부터 만만치 않다.


발언하는 최상목 부총리
(서울=연합뉴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강석훈 한국산업은행 회장. 2024.1.8 [기획재정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올해도 금융시장의 화두는 작년과 같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디스인플레이션이 확실한 만큼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 자명하고, 관건은 시기라는 문제의식이다. 한번 선수를 돌린 거대한 배는 다시 쉽게 방향을 바꾸지 못하기 마련이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인하되기 시작하면 세계 자산시장 전반에 유동성 훈풍이 불 것이고, 자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희망 회로가 작동하고 있다. 시장이 예상하는 연준의 첫 기준금리 인하 시기는 3월이다. 이 전까지 앞으로 2번의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가 남았다. 다만 지난주 발표된 12월 CPI는 연준이 거쳐 가야 할 길이 매끈한 포장도로가 아니라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 시장은 한쪽으로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좌충우돌이 계속 반복될 여지가 많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런 시장의 속내를 너무 잘 안다. 이 총재는 향후 금리 방향에 대해서는 토를 달지 않으면서 채권시장이 속도를 내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를 보였다. 이 총재는 올해 첫 기자간담회에서 "금통위원들이 현재 상황에서 금리 인하 논의 자체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며 사견을 전제로 "적어도 6개월 이상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섣불리 금리인하에 나설 경우 인플레이션 기대를 자극하면서 물가상승률이 다시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부동산을 걱정하면서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함으로써 물가안정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시장은 이를 가볍게 무시하고 있다. 금통위 후 통안채 91일물 낙찰 금리는 3.380%로 3.40%대를 뚫고 내려갔다. 기준금리보다 10bp 넘게 낮아졌다. 희망 회로가 희망 고문이 될 수도 있다.


작년 중순부터 기준금리(보라), 91일 통안(녹색)과 CD(빨강), 국고3년(파랑) 추이

 


다행인 점은 첫 단추를 잘 채웠다. 갑진년 초부터 이미 대한민국 경제와 금융시장이 한차례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태영건설이 우여곡절 끝에 채권단의 동의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돌입한 사례는 올해 시장 안정을 일정 부분 담보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 등이 또 발생할 경우 대주주의 책임 이행을 선결 조건으로 못 박은 모범 선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채권단 대표인 산업은행 외에도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과 이례적으로 대통령실까지 모두 나섰다. 이번 일이 앞으로 닥쳐올 나쁜 일들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고 믿게 해주는 '액땜'으로 효과를 발휘했으면 좋겠다. 올해도 투자자는 불확실성을 관리하면서 버텨야 한다. 일본 속담에 돈은 끈기의 나무에서 자란다고 한다. (취재보도본부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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