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정선영 특파원 = 최근 금융시장이 귀담아들어야 할 격언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연준에 맞서지 말라'. 오랫동안 금융시장에서 전해져 온 이 말이 존재감을 재확인하고 있다.

금리인하 기대에 들뜬 금융시장과 열기를 식히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간의 미묘한 힘겨루기가 지속된 탓이다.

결국 미 연준은 시장의 기대를 조정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를 한껏 부추겼다. 제롬 파월 의장이 2024년 금리인하에 나설 것을 언급하면서 예상보다 더 큰 파장이 일었다.

그보다 놀라웠던 점은 하루 만에 존 윌리엄스 뉴욕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가 나서서 파월 의장 발언의 여파를 뒤집은 것이었다.

윌리엄스 총재는 금리인하가 아직 FOMC 회의에서 논의되는 주된 토픽이 아니며, 인하 시점을 생각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 후에도 여러 지역 연은 총재들은 줄줄이 금리인하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리인하 신중론'을 내세운 연준 당국자들은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까.

윌리엄스 뉴욕연은 총재의 최근 연설을 다시 보면 그가 인플레이션 안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윌리엄스 총재는 인플레이션을 양파 껍질에 비유한다.

여러 겹으로 이뤄진 양파 껍질처럼 인플레이션도 3개 층으로 이뤄져 있고, 이 중 한 겹 한 겹이 개선되고 있는 상태다.

윌리엄스 총재는 첫 번째 바깥쪽 양파 껍질은 전세계적으로 거래되는 상품 물가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식품 가격 인플레이션이 2% 미만으로, 에너지 가격은 오히려 하락해 인플레이션을 낮췄다고 그는 설명했다.

두 번째 양파 껍질은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물가다. 공급망 병목현상이 줄어들면서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크게 낮아졌다고 한다.

가장 안쪽에 있는 것이 근원 서비스 인플레이션이다. 이 역시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고 윌리엄스 총재는 평가했다. 주택을 제외한 근원 서비스 물가 상승률도 둔화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장기 기대인플레이션 역시 연준 목표치인 2%에 잘 고정돼 있다고 봤다. 임금 인플레이션 역시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봤다.

윌리엄스 총재는 뉴욕 연은의 이코노미스트들이 개발한 임금 인플레이션 지수가 2021년 12월에 7%에 가까웠다 지금은 4.5% 부근으로 낮아졌다고 언급했다.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보스틱 총재는 금리인하는 올해 3분기에나 가능하다고 해 시장의 3월 인하 기대에 실망을 안겨준 바 있다.

그 역시 인플레이션 완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보스틱 총재는 지난 18일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했고, 이것은 바로 정책에서 긴축을 줄이는 것을 고려할 때가 다가오는 이유라고 언급했다.

미 연준이 2023년 연말 개인소비지출(PCE) 인플레이션을 약 2.9%로 낮췄지만 최근 11월 PCE 인플레이션은 전년대비 2.6%로 이보다 낮았다고 그는 말했다.

또 PCE 인플레이션의 6개월, 3개월 변동도 11월 현재 목표치인 2%와 약간 비슷하거나 낮다고 봤다.


미국 PCE 인플레이션 그래프
출처: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 연설문

 


그는 이처럼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한 점을 반영해 원래 연방기금 금리 정상화 시기를 4분기로 봤는데 올해 3분기로 앞당겼다고 언급했다.

보스틱 총재는 문제는 너무 오랫동안 너무 제약적인 정책을 유지하면 고용 시장과 거시 경제에 불필요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가 언급한 '수동적(소극적) 긴축(Passive tightening)'은 최근 금리인하 시기를 둘러싼 엇갈린 시각차를 단번에 정리할 만한 대목이다.

수동적 긴축은 인플레이션 상승률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금리를 그대로 유지하면 정책이 점점 더 긴축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연준이 가만히만 있어도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면서 금리인상 효과가 더 커지는 셈이다.

보스틱 총재는 칠면조 요리에 정책을 비유한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은 총재의 말을 인용했다.

칠면조를 요리할 때 너무 오래 오븐의 열기 속에 두면 너무 익어버릴 위험이 있다. 오븐에서 칠면조를 꺼낸 후에도 열기가 남아있어서 계속 익기 때문에 완전히 익기 전에 꺼내야 한다고 굴스비 총재가 설명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칠면조가 너무 구워져 말라붙은 상태로 명절 식사를 해야 할 수 있다는 경고다.

여기서 칠면조를 꺼내는 타이밍은 연준이 정책이 과도하게 긴축적으로 되기 전에 금리를 내려야 하는 타이밍이라 할 수 있다.

보스틱 총재는 "위원회가 적극적인 긴축 정책을 중단한 후에도 통화정책의 제약적 효과는 경제활동과 고용시장에 계속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섬세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너무 오래 긴축을 계속하면 경제를 지나치게 위축시키고, 고용 시장을 취약하게 만들어 오히려 가계와 기업의 경제를 불안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연준 내 매파로 꼽히는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 역시 과도한 긴축을 조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월러 이사도 인플레이션이 반등하지 않는 한 FOMC가 올해 금리를 낮출 수 있다고 봤다.

금리 인하 시점과 인하 횟수는 데이터에 따라 달라질텐데 과거의 사이클처럼 신속하고 한꺼번에 많은 폭의 금리를 인하하지는 않을 것으로 그는 봤다.

경제 활동과 고용시장이 양호하고, 인플레이션이 점차 2%로 낮아지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빠르게 움직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 월러 이사의 견해다.

이처럼 '금리인하 신중론'을 내세우는 연준 당국자들의 말은 과도한 긴축을 피하기 위한 적절한 인하 타이밍을 찾는 일과 맞닿아 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양파 껍질 상황은 매우 양호하며, 칠면조는 거의 다 익은 상태다.

당국자들이 정책이 이미 충분히 제약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보면 연준은 이미 현재의 인플레이션 상태에서는 금리를 올릴 만큼 올렸음을 반영한다.

특별히 충격적인 이슈가 없다면 연준이 지금 이대로만 유지해도 수동적 긴축으로 인플레이션은 계속 2%를 향해 낮아지는 경로에 있게 된다.

남은 것은 '수동적 긴축' 기간이 얼마나 될지, 경기 침체까지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를 조절하는 작업이다. (정선영 뉴욕 특파원)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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