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해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가 금융시장을 옥죄고 있다. 단기간에 해결되지도, 해결될 수도 없는 사안이어서 최대 불확실성 요인으로 남아 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개시는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PF는 부동산만의 문제가 아닌 그 자체가 금융에 깊숙이 파고든 문제여서 불안감은 가시질 않는다.

워크아웃 협상 물꼬 다시 트인 태영건설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을 신청한 태영건설이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 전액을 납부하며 채권단과의 협상 물꼬가 다시 트였다. 또한 태영건설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자금 1천549억원의 태영건설 지원, 에코비트 매각 추진 및 대금 지원, 블루원 지분 담보 제공 및 매각 추진, 평택싸이로 지분 담보 제공 등 4가지 자구안 이행 외에 추가 자구안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 모습. 2024.1.8 superdoo82@yna.co.kr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 글로벌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한국 부동산 시장이 향후 1~2년 내 의미 있는 수준의 회복세를 보일 가능성은 작다고 전망했다. 집값이 많이 내려가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정부가 부동산 시장 부양에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며, 가계부채가 큰 리스크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런 전망은 시장 컨센서스에 대체로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부동산 시장만큼 회복 탄력성이 더딘 시장도 드물다.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문제보다는 금리를 포함한 거시 변수가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결국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지 않고, 금융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PF 문제는 장기 숙제로 남게 된다. 하지만 PF 시장에 이미 발을 들여놓은 금융사들은 오래 기다릴 수 없다. 다행히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부실 전조가 보이거나 이미 부실이 진행된 사업들이 있다면 빚잔치를 시작해야 한다. 이미 제2금융권의 대출 연체율은 고공행진 중이다. 시스템 리스크로 확전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여전히 우세하긴 하지만, 장담할 수 없다. 2천50억 때문에 벌어진 레고랜드 사태가 금융시장을 얼마나 망가뜨려 놓았는지를 보면 더 그렇다. 무엇이 트리거가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찝찝함은 해소되지 않는다.

정부가 PF 연착륙을 위해 적극 개입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근본적 문제 해결보다는 심리적 안정 효과를 주는 측면이 크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적 계약을 정부가 직접 조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시장 연착륙과 안정화를 위해 정부가 개입하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시장 참여자들에게 안정과 경고의 동시 효과를 줄 뿐이다. 결국 시장에 발을 담근 금융사와 건설사들이 신속하게 의사 결정을 해야 할 일이다. 정부의 바람대로 PF 연착륙이 이뤄졌다 치자. 그 이후의 대책은 무엇인가. 금리는 내려갈 테고 욕망에 가득 찬 부동산 불패 신화 추종자들은 또 PF 시장으로 몰려들 것이다.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은 또 재연될 것이다. 금융시장이 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것처럼 보이지만 동일한 시행착오는 늘 반복되곤 한다.

과거 주로 SOC(사회간접자본)나 기간산업 투자를 위해 정책금융기관 중심으로 시작된 PF가 부동산 시장으로 파고든 것은 대규모 주택시장 부양 정책과 무관치 않다. 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의 내 집 마련 기회를 준다는 취지로 신도시 조성이나 대규모 주택 건설 정책들이 쏟아진다. 정부가 추동하고 금융사와 건설사가 뒷받침하는 한 부동산 시장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신화는 더욱 견고해졌다. 하지만, 이제는 그 믿음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PF 연착륙 대책 못지않게 시장의 근본적 구조를 확 바꿀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사실 현재의 부동산 PF 시장은 오로지 꿈과 믿음만으로 지탱되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사업이 성공적으로 완결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 비교적 성공률이 높았기 때문에 성공적인 구조라고 볼 뿐이다. 시행사들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대규모로 땅을 살 수 있다. 높은 이자를 주고 브릿지론이라는 돈을 빌려주는 금융사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건축물의 담보가치, 또는 향후 분양 사업성 전망만으로 과감하게 돈을 넣어주는 것이다. 인허가를 받아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면 본PF 대출이 또 나온다. 이걸로 브릿지론을 갚고, 사업비를 쓴다. 영세한 시행사들을 대신해 시공사로 선택된 규모가 있는 건설사들이 대출 지급보증을 서준다. 이렇게 '부동산 불패 신화'로 똘똘 뭉친 연합체는 탄생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미분양이 속출하고 부동산 시장이 고꾸라진다면 태영 사태처럼 흉흉한 상황으로 변한다. 태영건설이 무너지게 된 결정적 원인도 지급보증이었다. 그 규모만 무려 9조~10조원에 달한다.

자본력이 없는 시행 사업자들을 걸러내야 한다. 아예 시장 진입 자체를 막을 필요가 있다. 제2금융권의 부실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브릿지론은 일정 규모의 자본력을 갖추지 못하는 시행사에 줄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자기 돈 없이 남의 돈만으로 리스크가 큰 수천억원에서 수조원대에 이르는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자체가 난센스다. 부동산 시장판 봉이 김선달을 양산해 주는 꼴이다. 건설사의 지급보증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부동산 PF는 절차 중 어느 하나라도 삐끗하면 줄줄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버리는 취약한 구조다. 얼음판 위에 50층짜리 집을 짓는 것과 다름없다. 논란은 있지만 후분양 제도에 대한 변화 고민도 필요하다. 위기는 기회다. 제도를 정비하고 필요하면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부동산 시장이 더 죽는다는 아우성이 분명 나올 것이다. 그래도 극복해야 한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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