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다시 총대를 멨다. 상생금융과 내부통제 이슈로 은행권에 휘둘렀던 칼날의 방향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옮겨갔다. "이해관계에 기반한 것이라면 다소 강한 저항이 있더라도 그냥 뚫고 나가겠다"고 했다. 그간 산소 호흡기로 연명하던 PF사업 중 소생 가능성이 없는 경우라면 과감히 정리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셈이다. 곪을 대로 곪았으면서도 금리만 내리기를 기다리며 버티기를 해 온 사업자와 금융사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다. 특히 돈을 댄 PF사업이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도 돌려받지 못할 돈이라 판단해 충당금을 쌓지 않고 '좀비'를 신속히 솎아내지 않는 금융사에 대해선 "퇴출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엄포다. 지금껏 나온 당국의 메시지 중 가장 강력하다.

업무계획 간담회 입장하는 이복현 금감원장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2024년도 금융감독원 업무계획 기자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 2024.2.5 ryousanta@yna.co.kr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금융권에선 '4월 PF 위기설'이 회자했다. 그럴 때마다 당국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며 진화했다. 하지만 금융권의 그러한 판단은 분명 합리적 의심이었다. 드러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모두가 위기라고 입을 모으고 있는데, 당국의 스탠스는 여전히 '정중동(靜中動)'이었기 때문이다. 연착륙이라는 미명하에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과 자산유동화증권의 돌려막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 의외로 평온했다. 그러다 태영건설 사태가 불쑥 튀어나왔다. 말이 불쑥 이지 예정된 수순이었다. 당국은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를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었지만, 마냥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다.

인지언어학의 세계적인 석학인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말이 어떻게 우리의 인식을 결정짓는지를 설명한다. 언어의 프레임화다. 프레임을 선점하면 의도한 대로 전략을 끌고 갈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한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선 더 그렇다. 그런데 정치권뿐 아니라 경제의 영역에서도 프레임 전쟁은 강력하게 작동한다. 당국이 반복적으로 내놓는 'PF 시장 연착륙'이라는 말도 어찌 보면 그런 일환이지 않았을까. 물론 시장 안정화에 최종적인 목표를 뒀다는 점까지 폄훼하고 싶진 않다. 다만 시장은 '어떻게'가 불분명한 메시지를 프레임화하는 데 대해 강력하게 의심한다. PF 정상화 펀드, 대주단협약과 같은 연착륙을 위한 도구들이 쏟아졌지만, 어떻게 시장의 욕망을 억제하고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할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PF 시장에 양아치들이 너무 많다". 두 가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시장 구조조정이 어렵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인 동시에 속된 말로 '배 째라'를 연발하는 욕망의 군상들이 아직도 넘쳐난다는 액면 그대로의 말이기도 하다. 당국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금융사를 앞세워 부실 사업장에 대한 정리, 특히 경·공매 등을 통해 주인을 바꾸는 작업을 시도해 왔다. 하지만, 쉽지 않다. 100원을 주고 땅을 샀는데 60원을 받고 팔라고 하니 저항이 만만치 않다. 사업이 시작도 안 돼 그냥 땅만 있는 경우라면 모르지만, 사업이 초기 단계를 넘어선 경우라면 사실 조정은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그런데 문제는 막히면 막힌 대로 방치된 곳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금리가 내릴 수 있다는 신호가 나온 이후에는 그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

사실 정부의 일부 관계자는 금리가 본격적으로 인하되는 추세로 바뀌면 현 위기 상황이 조금 개선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뭐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연착륙이라는 게 그저 일이 터지지 않으면 되는 거였어라는 생각까지 미치게 된다. PF 시장의 많은 '양아치'들과 결사 항전을 벌일 생각은 없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귀결한다. 그런데 PF 시장에 뿌려진 134조원의 만기의 시간은 재깍재깍 돌아오고 있다. 만기를 연장해 주고 이자를 감면해 주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지속하기에는 버거운 상황이다. 금융사의 부실 정도는 우상향한다. 뿌려진 돈의 총량을 줄여야 하는 시간이다. 그러려면 한판 대결에 나서야 한다. 늦었지만 이복현 원장이 던진 메시지는 그 시작점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지난달 5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현재의 PF 위기는 단순히 건설산업만의 위기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부동산경기 침체기 취약해진 사업 포트폴리오와 부동산 경기 호황기에 과도하게 높아진 부채비율 등으로 몇몇 건설사가 겪는 국지적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니라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 호황기에 부동산 시장으로 과도하게 유입된 자금이 회수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하면서 차주와 대주 모두 충격에 취약해졌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돈의 문제, 금융의 문제라는 점을 환기한다. 그동안 몇차례 PF 관련 칼럼에서 지적했지만, 현재의 PF 위기는 금융의 해법으로 풀어야 한다. 욕망을 키운 게 돈이라면 그 욕망을 억제하는 방법도 돈이 돼야 한다. 당국은 금융사에 망하고 싶지 않으면 돈 문제를 빨리 해결하라고 다그치고 압박해야 한다. 금융사를 움직일 권한과 책임은 당국에 있다. PF 시장의 양아치를 솎아내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피를 안 묻히는 구조조정은 없다. 당국이 좀 더 용감해져야 한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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