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진 한은 외자운용부장>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맹인이 산에 올라가면 지팡이로 짚어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확인하며 오르죠. 투자 역시 그렇게 제약된 조건 속에서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한국은행에서는 보기 드물 게 민간인 출신인 김의진외자운용원 투자운용부장을 만나 투자의 원칙을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투자는 '예측'에만 의존해선 안되며 하나 하나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말이다.

삼성 경제연구소, 삼성 생명보험, 삼성 자산운용 등에서 25년간 채권운용 전문가로 착실히 이력을 쌓아왔기 때문일까. 그의 투자 원칙은 상당히 신중하다.

그리고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신의 예측과 시장이 달랐을 때 고집부리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그러나 시장에 대해 고집을 부려선 안됩니다. 예측이 틀리더라도 왜 틀렸나 바로잡는게 중요합니다."

김 부장은 시장에 대한 예측이 틀렸을 때 빨리 포기하고 인정하는 '유연성'을 투자의 또 다른 중요한 원칙이라고 꼽았다.

그는 "운용에는 왕도가 없다"고 말한다. 시장 앞에서 겸손한 그의 태도는 민간 운용사에서 다년간 쌓인 내공을 가늠케 한다.

외자운용원이 외환보유액 투자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 전문가를 영입하면서 시장의 주목을 톡톡히 받은 김의진 부장. 향후 외환보유액 운용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떤지 들어봤다.

-한은에서 외환보유액 운용을 맡고부터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그동안은 원화 베이스로 투자했다면 지금은 달러 베이스가 된 점이 가장 큰 변화다. 외환보유액은 달러로 환산되기 때문이다. 해외 이슈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해외 이슈가 보이면 국내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까를 살펴보고 투자를 결정했는데 지금은 그 자체가 직접적으로 투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다.

-외환보유액이 최근 계속 사상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부담이 크겠다.

▲그동안은 투자를 잘하고 못하고가 특정 민간 기업의 수익에 영향을 주는데 그쳤다. 그런데 지금은 외환보유액 운용을 잘 못하면 국가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외자운용원 조직이 변화하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전에는 다른나라 외환보유액 운용방식 등을 봤다면 지금은 민간 자산운용사 운용 방식도 보는 등 달라졌다. 통화별로 묶어서 투자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투자 대상이 많아지면서 상품별로 접근하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본다.

예를 들면 회사채만 보더라도 달러, 유로 등 통화의 종류보다 그 기업의 크레디트가 중요하다. 미국 기업이든 영국 기업이든 크레디트 분석은 비슷하다. 정부채 역시 통화보다 향후 금리 전망, 장단기 금리 흐름, 매크로 경제여건 등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상품별로 분석 방법이 비슷한 점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

이전에는 달러 운용담당자가 정부채, 회사채를 다 운용하면서 금리 전망, 크레디트 분석 등을 다 맡았다면 이제는 분석 방법이 비슷한 상품끼리 묶은 셈이다.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액 운용, 글로벌 트렌드 변화는 어찌 보나

▲외환보유액 뿐 아니라 자산운용을 하는 사람들도 달라지고 있다. 발생 확률은 적으나 한 번 발생하면 영향이 큰 테일리스크(Tail Risk), 전혀 예상치 못했던 돌발변수가 발생하는 블랙스완 리스크 등 정규분포로 설명할 수 없는 변수들이 어떻게 반영될지가 주목된다.

과거에는 자산간 상관계수가 일정하게 유지됐는데 금융위기 이후에는 이런 흐름이 깨져버렸다. 분산투자는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을 엮어서 리스크를 낮추는 것인데 최근에는 이런 상관관계 자체가 일정하지 않아 좀 더 생각해야 한다.

운용 다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금리가 낮아 미국채 등에 대한 투자는 한계가 있다. 덜 위험한 대신 수익이 적을 수 있다. 그래서 이전에는 안보던 변수를 보게 된다. 다른나라 중앙은행들이 최근에 우리나라 투자를 고려하는 것도 우리경제가 좋은 점도 있지만 미 국채 수익률로 안되니까 대안을 찾다보니 안보던 변수를 보는 것이다. 유럽도 마땅한 대안이 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채 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새로운 대상을 찾는 것이다.

-다변화의 일환으로 중국 위안화 투자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중국 은행간 채권시장과 적격외국인기관투자자(QFII) 한도를 통한 주식시장 투자 등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정식조직은 아니지만 관련 업무를 하는 직원들이 준비를 하고 있어 조만간 투자에 나설 것이다.

-위안화 투자에서 수익성과 안정성, 병행하기 쉽지않아 보인다. 어찌 보나

▲우선 외환보유액은 안정성이 우선돼야 한다. 유사시 찾아써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결혼 자금을 준비한다고 치자. 일단 여윳돈을 투자할 때 쉽게 찾을 수 있고 찾을 때 어느정도 수익도 있어야 하지 않나. 안정성은 가장 큰 부분이다.

위안화 투자의 경우 규모가 워낙 작아 수익성 추구는 쉽지 않다. 유동성도 아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위안화는 국제 통화로 많이 열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향후 위안화 위상이 높아지면 투자를 확대할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

유동성은 살 때와 팔 때의 가격 차이, 즉, 비드오퍼 스프레드가 얼마나 벌어지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위안화 자산 투자는 이런 측면에서 유동성은 떨어지나 트레이딩 개념은 아니다. 따라서 성과를 보고 차츰 투자를 확대해 간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민간 전문가 출신으로서 외자운용원에서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본인의 역할은

▲각 운용팀별로 자산을 적절히 배분하는 역할을 잘 하고자 한다. 현재 정부채, 회사채, 자산유동화채권(MBS), 외환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런 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간 자산운용사 방법 중 도입할 게 없는지 살피겠다. 시장 분석툴이나 의사결정 프로세스 등이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정착되도록 할 것이다.

아울러 민간 기관은 보통 밥먹고 그것만 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한은과 이들 기관간 접점 역할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칫 외환보유액 운용에 대한 외부의 여러 지적이 나올 수도 있지만 유연하게 큰 그림을 보려고 한다. 취사 선택을 하는 것은 어렵지만 작은 것을 쫓아가기 보다 큰 흐름을 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입행한지 한 달 남짓 지났는데 향후 포부는 어떤가

▲요즘 의욕이 많이 생겼다. 전문 계약직으로 입행했으나 앞으로 3년간의 시간은 롱텀이라고 볼 수 있다. 민간 운용사에서는 하루하루 수익률에 따라 생활했는데 3년간의 긴 시간을 갖고 협의해서 가져갈 수 있는 여건이 생긴 셈이다. 추흥식 외자운용원장과 성격은 좀 다른 듯하지만 생각하는 방향과 큰 시각에서는 같은 듯하다.호흡을 맞춰서 외환보유액 운용을 잘 해 나가고 싶다.

한은의 외환보유액 운용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실제 운용에서의 철학과 기법 등 기존에 있던 것과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서로 조화시켜 가는 것이 중요하 것이라고 본다.

▲한은맨으로서의 생활에 좀 익숙해졌나

아직 7시 전까지 출근하는 습관은 못버렸다. 예전에 집이 인천이었을 때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는 편이었는데 지금 동네가 달라져도 마찬가지다. 한은에 입행하니까 출근시간을 좀 넉넉히 잡아도 되는데 평소 하던대로 2시간 정도 일찍 온다.

출근해서는 뉴스도 보고 낮에는 좀처럼 읽을 여유가 없는 리포트도 꼼꼼히 읽어본다. 대신 야근이나 주말 근무는 안하는 편이다.

한은 와서 제일 신기했던 것은 은행 입출금(CD)기에 신권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신권을 뽑을 때 참 기분이 좋았다.

-향후 글로벌 경제는 어떻게 보고 있나

▲미국 주택지표 등 경제지표도 좋아지고 있어 개선되는 쪽으로 갈 것으로 본다. 시간 문제일 뿐이다. 유럽도 최악의 상황을 벗어난 것으로 본다. 방향이 좋아지는 쪽으로 가면 그동안 이상하게 나타났던 자산간 움직임도 개선될 것으로 본다.



김의진 투자운용부장은 지난 1986년 삼성경제연구소 창립멤버로 입사한 후 삼성생명보험, 삼성자산운용 등 민간기관에서 25년간 채권, 주식 뿐 아니라 파생상품 투자 등을 맡아온 운용 전문가로 공모를 통해 올해 3월부터 한국은행 외자운용원 투자운용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풍부한 자산운용 경험과 함께 박사학위, 재무분석사(CFA), 재무위험관리사(FRM) 자격도 갖추고 있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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