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창 기자 = 글로벌 경기 침체와 대기업 규제 움직임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대기업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선뜻 인수 주체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특히 실무진이 경영진에 보고하지도 못한 채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고 17일 IB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매물의 덩치가 클수록 더욱 그렇다.

인수하기 위해서 차입을 해야 하는데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라는 설명이다.

대기업 오너가 경기 침체에 대비해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한계 사업을 정리하라고 지시하는 마당에 실무진이 차입을 수반한 인수 검토보고서를 올리기 어렵다.

더군다나 정치권이 '경제 민주화'를 내세워 강도 높은 대기업 규제를 천명하고 있어 더욱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 대기업은 과거에 인수하려다 실패한 기업이 재차 매물로 등장했으나 실무선에서 검토하다가 끝낸 것으로 전해졌다. 업황 부진까지 겹쳐 재무구조 약화에 계열사까지 통폐합하는 마당에 인수를 전제로 한 보고서를 경영진에 올릴 수 없다며 거절했다.

IB 업계 관계자들은 이처럼 외환위기 이후 가장 'M&A 불경기'라며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도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여전히 M&A는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오너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경우가 많다. 해당 기업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재무구조에도 오너의 뜻이라면 과감하게 인수에 나서고 있다.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 중인 동부그룹은 최근 동부팜한농을 앞세워 몬산토코리아 종자사업을 인수했다.

M&A 후유증으로 여전히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동부그룹은 2010년부터 1천억원 미만의 소형 딜을 여러 차례 성사시켰다.

모두 김준기 회장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다.

역시 한진그룹도 조양호 회장의 결단으로 한국항공우주(KAI) 인수전에 단독으로 뛰어들었다. 겉으로는 '가격이 맞아야 산다'는 신중한 자세지만 내심 유찰을 통한 수의계약을 기다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파라다이스 면세점을 인수한 신세계그룹도 수년 전부터 면세점 사업에 관심을 표명한 정용진 부회장의 뜻대로 움직였다.

결국, 현재 M&A 시장은 철저히 '회장님의 뜻'으로 움직이는 셈이다.

외국계 IB의 한 간부는 "과거보다 인수 후보군이 상당히 줄었다"며 "실무진이 관심을 보이면서도 '위에 보고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종종 듣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IB의 한 M&A 팀장은 "실무진과 머리를 맞대고 보고서를 만들고 이후 오너의 승인을 받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며 "특히 실무선에서 중단되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큰 이유로는 역시 경기 침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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