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창 기자 = 웅진그룹 지주사인 웅진홀딩스와 계열사인 극동건설이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하면서 차입을 통한 무리한 M&A로 부실 위험에 빠진 '승자의 저주'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시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 외국계 펀드에 넘어갔던 기업을 인수한 주체들이 과도한 차입 인수에다 경기 부진까지 겹치면서 어려움에 빠졌다.

이처럼 '승자의 저주'의 원인은 비슷하다.

그러나 저주를 푸는 방법과 결과는 달랐다.

궁극적으로 자산 매각이라는 방법은 비슷하지만, 어떤 자산을 어느 시기에 매각하느냐와 주력 사업의 실적이 받쳐주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랐다. 또 금융시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도 중요했다.

8일 IB 업계 전문가 대부분은 두산그룹을 모범 사례로 꼽았다. 반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가장 좋지 못한 사례로 지적했다. 최근 물의를 일으킨 웅진그룹도 마찬가지다. 대한전선 등은 계속 차입금 문제를 해결하는 중이다. 재무구조가 취약함에도 M&A에 다시 뛰어든 동부그룹은 여전히 금융권의 감시 대상이다.

두산그룹은 지난 2007년에 미국 잉거솔랜드사의 소형건설장비부문인 '밥캣(현 DII)'을 인수하면서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렸다.

두산그룹은 위기설이 나오자 2008년 포장재 사업 계열인 테크팩의 지분을 MBK파트너스에 매각했고 '처음처럼'으로 유명한 주류비지도 롯데에 넘겨 총 9천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했다.

2009년 4개 계열사를 처분할 때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기법을 활용했다.

두산그룹은 PEF와 손잡고 설립한 두 개의 특수목적회사(SPC)에 한국항공우주(KAI) 지분을 비롯해 두산DST, SRS코리아, 삼화왕관을 매각했다. 매각 규모만 7천800억원에 달했다. 두산그룹은 2천800억원을 출자해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후에도 꾸준한 자산 매각으로 부채비율 등을 급격히 낮췄다. 한편으로는 체코의 터빈업체 스코다파워를 인수하는 등 주력 사업의 경쟁력 강화도 진행했다.

지난해에는 밥캣 차입금에 대한 리파이낸싱에 성공했고 최근에는 두산인프라코어가 5억달러 규모의 외화표시 영구채권 발행했다.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정받는 영구채권 발행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효과도 봤다.

두산그룹은 빠른 의사결정으로 적기에 자산을 매각하고 금융시장을 적절히 활용한 셈이다. 여전히 잔여 차입금 상환이나 두산건설 재무 개선 과제를 안고 있으나 어느 정도 밥캣 리스크에서 벗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2006년 대우건설과 2008년 대한통운을 치열한 경쟁 끝에 높은 가격으로 인수한 금호그룹도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았다.

차입하면서 맺은 풋백옵션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금호그룹은 이듬해 6월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은 후에야 대우건설 매각을 결정했다. 결국 붙잡고 있던 대한통운까지 다시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가족 간 경영권 분쟁까지 벌어졌다.

수많은 M&A를 실행했던 대한전선은 이미 재무 우려가 제기되던 2008년 남광토건을 놓고 지분경쟁까지 벌였고 결국 인수한 자산을 도로 팔아야 했다. 영업이익률이 낮은 전선업 특성상 불어난 차입금을 한꺼번에 해소하기 어려워 최근에도 채권단과 협조융자 만기 연장, 유상 증자 대금의 내년 신주인수권부사채 상환 등에 합의했다.

유진그룹은 뒤늦게나마 우여곡절 끝에 하이마트를 매각해 재무 부담을 덜게 됐으나 그룹의 '캐시 카우(cash cow)'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동부그룹은 동부하이텍 반도체 부문 정상화를 위해 김준기 회장의 사재출연과 자산 매각으로 위기를 넘기는 듯했으나 중소형 M&A를 연이어 단행, 다시 금융권의 우려를 받고 있다.

외국계 IB 관계자는 "웅진그룹의 경우 웅진코웨이를 제외하고 사실상 팔 수 있는 자산이 거의 없었다"며 "극동건설이나 태양광 사업에 대해 판단이 빨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국내 IB 관계자도 "차입 인수로 어려움에 빠진 기업 대부분이 자산 매각의 시기를 놓쳐 더 큰 위기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금융시장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두산그룹의 사례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coop21@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