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창 기자 = 투자은행(IB)과 회계법인, 로펌 등 인수·합병(M&A) 자문사들은 이번 겨울이 유독 춥게 느껴진다.

경기 침체 여파와 대기업 확장에 대한 규제로 매물만 늘어날 뿐 인수하겠다는 기업이 드물다. 일부 중소형 자문사들은 연합인포맥스가 집계하는 '자본시장 리그테이블'에 4분기 실적란을 빈칸으로 제출하기도 했다.

24일 M&A 자문업계에 따르면 자문사들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영업에 집중하는 한편, 딜을 따내고자 갖가지 방법을 쓰고 있다.

자문 수수료 덤핑은 이미 고전적인 방법이다.

IB뿐만 아니고 시간당 수수료를 받는 로펌도 자문계약을 맺을 때 아예 '성공 수수료(success fee)' 조건을 내세워 기본료를 낮게 책정한다. 즉, 딜이 성공할 경우 시간당 수수료를 많이 받고 실패하면 기존 관행보다 적은 돈만 받는 것이다.

자문을 맡기는 기업이나 개인으로서는 딜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만큼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이러한 조건을 선호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본료가 더욱 내려가는 등 로펌 간 경쟁이 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IB에 이어 로펌도 사실상 덤핑 경쟁에 나선 셈이다.

회계법인은 아예 재무자문이 아닌 회계 실사자문을 전략적으로 노리기도 한다. 성사 가능성이 낮은 딜의 재무자문을 간신히 따냈다가 성공 수수료를 받지 못하느니 차라리 딜 성사 여부를 떠나 확실하게 수수료를 받는 회계 실사자문이 훨씬 실속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회계법인 경영진은 딜 성사 가능성을 저울질하기 바쁘다.

IB는 매각자문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그만큼 인수자문이 더 힘들다는 뜻이다.

인수의향을 가진 기업은 경기 침체와 재무부담을 우려해 인수가격은 물론 자문 수수료까지 무조건 깎으려고 든다. CEO들이 점점 더 딜을 성사시키려는 자문사의 조언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푸념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쩍 덤핑 경쟁에 노출된 수수료는 더는 내려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부 IB가 트랙레코드를 위해 공동 자문사에 이름만 올려놓고 거의 수수료를 받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자문사들은 여전히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인수 심리가 급격하게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특히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도 중소기업 영역 사업을 접거나 한계 사업을 정리하기 바쁜 실정이다.

국내에서 영업하는 외국계 IB도 그동안 짭짤했던 해외 자원개발 관련 자문을 따내기 어려워졌다. 중국과 일본 기업들이 자원개발사 가격을 잔뜩 올려놓은데다 공기업과 종합상사도 경기 침체에 대비해 더욱 신중해졌다.

이러한 경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자문 수수료가 내려갈수록 서비스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문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를 들어 10명을 투입할 작업에 5명만 투입해 인건비를 줄이기도 한다"며 "이렇게 되면 당연히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설사 인수에 성공해도 다각적인 자문을 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IB나 회계법인, 로펌이 무리한 경쟁을 촉발했으나 기업뿐만 아니고 공공기관 실무자도 무조건 비용을 줄이고 보자는 식으로 나온 탓도 있다"며 "최근 딜 성사 가능성이 떨어지면서 지나치게 수수료를 낮추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매각이나 인수에 나선 기업은 성사 여부를 떠나 일종의 노하우와 자료를 쌓게 되는데 낮은 수수료는 그만큼 값싼 정보만 얻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인수보다는 자체 합병이나 분할이 많아졌는데 자문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며 "이래저래 추운 겨울"이라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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