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탈리아는 총선 보름 전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유권자가 여론조사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이다. 마지막으로 공개된 여론조사에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민주당과의 지지율을 크게 좁혔다. 상승 발판을 마련한 베를루스코니가 공표 금지 기간에 마지막 힘을 낸다면 대역전 드라마를 쓸 수도 있다. 그런데 '선거의 명수'인 베를루스코니도 이런 변수들을 만나리라 예상치는 못했을 것 같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임과 산레모 가요제가 그것이다.

교황은 지난 11일(이하 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갑작스럽게 사임을 발표하고 "고령으로 나의 능력이 교황의 직무 수행에 더는 적합하지 않다"고 밝혔다. 600년 만에 처음으로 생전에 사임한 교황이 나오자 베를루스코니는 곧 신문 1면에서 밀려났고 언론은 온통 교황의 사임 배경, 향후 행보에 관해 기사를 쏟아냈다.

이탈리아 서부 산레모에서 13일에 개막된 가요제도 늘 황금 시간에 TV에 얼굴을 비추던 베를루스코니를 밀어냈다. 가요제 기간은 주요 정당들의 저녁 기자회견과 겹치기도 했다.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의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당직자를 회견장에 대신 보냈는데 가요제의 인기를 알고 내린 결정이었는지 모른다. 산레모 가요제 시청률은 42.8%를 기록한 반면 베를루스코니 전 내각 인사들의 기자회견 시청률은 1.4%에 그쳤다.

한 여론조사원은 언론의 과도한 교황 관련 보도가 베를루스코니는 물론이고 미디어를 가장 잘 아는 코미디언 출신 정치인 베페 그릴로에게도 독이 될 것이라며 "매일 신문 1면과 TV 시청자를 뺏김으로써 일부 유권자가 이탈할 것"으로 내다봤다.

베를루스코니는 14일 '사업하는 데 뇌물이 필요하다'는 자극적인 발언으로 헤드라인을 잠깐 점령하기도 했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교황 사임과 산레모 가요제가 총선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는 25일 오후 3시에 확인할 수 있다. (국제경제부 이효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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