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유럽에선 그리스의 통계 자료가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이 정설처럼 돼 있다. 2009년 게오르게 파파콘스탄티누 당시 그리스 재무장관이 호아킨 알무니아 유럽연합(EU) 경제ㆍ통화담당 집행위원과 사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가 예상치인 6%가 아니라 12%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적자 비율 예상치와 실제 값이 6%p씩 차이가 나는 곳이 그리스다. 그리스는 언젠가 막대한 군사 비용을 빠뜨렸고 병원 부채 수십억유로를 반영하지 않기도 했다. 흐릿한 경제지표는 그리스 경제의 불확실성을 더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리스는 시장에서 신뢰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는 듯 보인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그리스가 금융 파생상품을 이용해 적자 규모를 실제보다 축소했다고 보도했다. 그리스 정부의 한 내부자에 따르면 2002년에 여러 투자은행이 정부 부채 상환을 연기할 수 있는 복잡한 금융상품을 제공했고 정부는 이러한 상품에 투자했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미국계 투자은행은 그리스 정부와 대규모 이종통화스와프(CRC) 계약을 체결했다. CRC 계약은 미 달러화와 엔화로 발행된 국채를 일정 기간에 유로화 표시 국채로 바꿨다가 다시 원상복귀하는 것이다. 이러한 거래는 매일 치러야 할 비용이 있는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는 통상적인 리파이낸싱(재융자) 작업이다. 문제는 골드만삭스 등이 가상의 환율과 함께 특별한 종류의 스와프를 고안, 원래 달러화나 유로화 표시채로 교환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유로화를 그리스에 안겨준 점이다. 이런 방법으로 골드만삭스는 비밀리에 그리스에 10억달러의 신용을 추가로 마련했다.

이렇게 마련된 신용은 그리스 국채 통계에 잡히지 않는 스와프로 위장됐다. 유로스태트의 보고 규정은 금융 파생상품을 포함한 거래를 종합적으로 기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의 한 파생상품 딜러는 "스와프를 통하면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조용히 합법적으로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가 CRC를 통해 당장 한숨 돌렸다고 하지만 이러한 신용은 언젠가 갚아야 할 빚이다. CRC에 사용된 국채 만기는 10~15년이다. (국제경제부 이효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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