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한국장학재단이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주식 4.25%는 더 이상 희소가치가 없다"

지난 12일 삼성카드가 보유 중인 에버랜드 주식 20.64% 가운데 17%를 주당 182만원에 총 7천739억원을 받고 KCC에 전격 팔기로 하자 국내 투자은행(IB) 업계에서 나온 얘기다.

장학재단이 우물쭈물하다가 굴러온 기회를 걷어찼다는 말들도 흘러나왔다.

14일 IB업계에 따르면 장학재단은 당초 13일께 보유한 에버랜드 주식을 공개적으로 매각하겠다는 공고를 내는 것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삼성카드와 KCC가 직전에 지분 매각과 매입을 성사시키면서 장학재단은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삼성카드와 KCC 간 거래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배경을 찾느라 숨을 쉴 틈도 없이 확인 작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결국, 장학재단은 에버랜드 보유 지분 매각 작업을 또다시 중단했다. 현재로선 언제 재개될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지난 2월 매각을 공식화하고 동양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해 매각 작업을 진행해 온 지 10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성과도 없이 손을 놔버린 것이다.

장학재단이 경악한 것은 삼성카드가 KCC에 매각한 가격이다.

장학재단은 에버랜드 지분가치가 최소 주당 250만원 정도는 될 것으로 봤는데 막상 성사된 거래 가격은 주당 182만원이었다.

삼성카드가 사업보고서에서 적시한 장부가치인 214만원보다 15% 할인된 가격이었다. 장학재단이 기대했던 가격에 비해서는 무려 27%가 낮다.

장학재단은 삼성카드가 지분 매각을 추진하면서 앞으로 기업공개(IPO) 등 투자자들을 고려한 어떠한 출구전략도 제시하지 않자 자신들보다 매각 작업이 더딜 것으로 봤다.

이런 사정을 투자업계에서도 잘 알고 있어 투자자들이 일단 자신들의 물량을 받아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 관심이 있는 국내 기관 투자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당초 기대 매각 가격인 250만원을 받고 팔았다면 2천650억원 가량을 확보할 수 있었겠지만, 삼성카드가 '덤핑'으로 주식을 팔면서 장학재단은 적어도 800억원 이상 '손해'를 보게 됐다.

공직사회 특유의 '안일함'에 따른 '실기(失機)'로 지분 매각에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됐다는 지적들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장학재단 보유 지분은 주당 182만원 이상에서 팔기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삼성카드는 KCC에 판 17% 이외에 3.64%를 국내외 투자자를 찾아 내년 4월 이전에 팔 계획이다.

소수지분이어서 KCC에 매각한 가격 이상으로 받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다. 추가로 할인될 가능성도 있다.

장학재단 입장에서는 설상가상이다.

국내 IB의 한 관계자는 "에버랜드가 비상장사지만 삼성그룹 지배구조에 중요한 회사여서 그 자체로 희소가치가 높다. 장학재단은 이를 최대한 활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희소성 높은 매물은 매각 타이밍이 상당히 중요하다. 장학재단이 보유한 지분은 소수지분에 불과하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가격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삼성카드에 한 방 먹은 것이다"고 덧붙였다.

장학재단은 지난해 처음으로 에버랜드로부터 약 5억원 가량의 배당을 받았다. 장학재단이 에버랜드 지분을 팔아 약 2천600억원이 넘는 돈을 받고 이를 은행 정기예금(연 4% 기준)에만 넣어 놨어도 매년 100억원이 넘는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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